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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담긴 따뜻한 온도를 인생의 참맛을 헤아려보다: <밥정>
고하늘(서현진): 점심은 먹었니? 저녁은? 아직 안 먹었지? - tvN 드라마 '블랙독' 9회 중에서 - 올해 2월 초에 종영한 tvN 드라마 '블랙독' 9회 마지막 장면에서 '고하늘(서현진)'은 생업 때문에 바쁜 엄마가 결국 대학입시설명회에 오지 않아 슬픔에 잠긴 제자 '진유라(이은샘)'를 위로하러 달려간다. '고하늘'은 학교 정문 근처에서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진유라' 옆에 함께 앉아 위와 같은 말을 건넨다. 문자 그대로 본다면 밥을 먹었냐는 말은 정말 단순하다. 그러나 극 중에서 이 말 한마디는 어쩌면 긴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히기 힘든 응어리를 의외로 빨리 풀어놓는다. 즉, 밥은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돌이켜 보면 배고픔을 달래는 그 이상의 힘 혹은 따뜻함을 지니고 있다. 박혜령 감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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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현주소를 상기시키는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
할아버지는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그런 건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라 했다. 학교에선 베트남 참전으로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다고 배웠다. '양국이 불행한 역사를 겪었다'라고 대통령은 말했지만 그 불행한 역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 이길보라 감독 -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심지어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한국 근현대사를 배웠다. 그러나 이길보라 감독처럼 어떤 교사를 만나든 파병의 대가로 미국이 한국군의 전력 증강과 경제 개발을 위한 기술 및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브라운 각서를 토대로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 파병을 실시했고, 그로 인한 베트남 특수 덕분에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다고만 배웠다. 심지어 이길보라 감독의 경험과 달리 본인은 베트남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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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의할 수 없는 힘을 깊이 있는 영화로: <작가 미상> (2018)
독일 출신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는 단편영화 (1997), (1998), (1999), (2002)를 연출한 후 첫 번째 장편영화 (2006)으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시작한 감독이다. 그러고 나서 그가 연출한 두 번째 장편영화는 (2010), 세 번째 장편영화는 (2018)이다. 그가 연출한 단편영화들을 접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필모그래피에서 장편 영화가 단 세 편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미뤄볼 때 영화에 투영된 그의 가치관이나 믿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4년 동독을 배경으로 한 과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을 관통하는 을 비교했을 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는 예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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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시대를 대하는 두 가지 방법, <조조 래빗>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으며, 곧 다가올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6개 부문(각색상, 미술상, 여우조연상, 의상상, 작품상, 편집상)에 노미네이트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2019)은 나치 시대라는 끔찍한 시대를 대하는 두 가지 방법을 보여준 작품이다. 우선,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마블 영화 (2017)에서 보여줬던 유머 감각과 약간 ‘Wes Anderson-ish’한 미장센으로 반혐오 풍자극(anti-hate satire)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을 일으키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비판과 곤경에 물러서지 않는 자세를 두려움 속에서도 견지해 가는 삶을 일기로 작성한 안네 프랑크(Anne Frank)를 기림으로써 비극적인 사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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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할 수 없는 과거의 낭만, <브라 이야기>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네아스트와 시네필 마저도 익숙하지 않은 감독이 반드시 존재한다. 독일 출신인 바이트 헬머 감독이 이에 해당한다. 바이트 헬머 감독은 1968년 당시 서독 하노버에서 출생했고, ‘현대판 동화 이야기꾼’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영화 (Tuvalu, 1999)로 데뷔하기 전 이력에서 찾을 수 있을 테다. 바이트 헬머 감독은 북독일 방송국(Norddeutscher Rundfunk, NDR)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던 중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동독으로 넘어가 에른스트 부슈 연극예술학교에서 연극 연출을 배웠다. 그리고 도중에 서독으로 돌아와 뮌헨 영화학교에 입학해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아마도 연극과 영화 모두 공부하며 접한 작품들이 상당하다 보니 바이트 헬머 감독이 다룰 수 있는 소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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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과 나의 세계에게: <페인 앤 글로리>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제72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겼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2019)는 감독 본인의 메타 인지적 태도가 반영된 작품이다. 영화를 못 찍는다면 인생은 의미가 없을 만큼 극 중 '살바도르(안토니오 반데라스)'에계 삶은 예술이고, 예술이 삶이다. 그런데, 그는 꾸준히 각본 작업을 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기 자신을 어두운 동굴 속에 몰아넣은 채 생활하고 있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본인이 만들어낸 주인공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된 현재 시점에서 지금까지 지나쳐 온 시간과 본인이 만들어낸 세계를 되돌아본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를 구성하는 여러 쇼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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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하지 않았기에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영화적 아름다움: 영화 <작은 빛>
알리 아바시 감독의 영화 (2018), 이수진 감독의 영화 (2018), 장률 감독의 영화 (2019) 등 최근에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들이 모호함이 짙게 물든 쇼트를 종종 활용하거나 열린 결말로 서사를 끝맺음하려는 경향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영화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불분명함이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는 관객에게 불명확한 쇼트가 만들어낸 시공간의 가정법적인 여백 안에 숨겨진 연출자의 질문을 주체적으로 발견하고, 직접 의견을 표출하고,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같은 영화를 관람한 다른 관객들과 토론할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독이 영화를 찍고 싶지만, 어떤 이야기를 발전시키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에 있거나,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구상했지만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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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면 설 곳이 없을 리베르탱들: <리베르떼> (Liberté, 2019)
※ 읽기 전 0. 영화 는 한국영상자료원 KMDb의 ‘2019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품 15편 중 하나입니다. 1. 이 아티클은 스포일러를 강하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영화가 담아낸 수위 높고 성적인 행위를 서술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읽는 동안 불편할 수 있습니다. 영화 는 알베르트 세라 감독이 독일 Volksbühne 극단과 함께 작업한 연극 공연을 극단 배우들과 다시 협업해 완성한 영화이며, 제72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을 받아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이다. 시놉시스에 의하면, 의 시간적 배경은 대략 프랑스 대혁명 직전, 공간적 배경은 포츠담과 베를린 사이 어딘가, 그리고 전반적인 상황은 리베르탱(Libertins, 16세기 말과 17세기의 프랑스 자유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