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환상 뒤에 가려진 현실 <플로리다 프로젝트>

2019. 9. 10. 18:00주목할 만한 시선

'<탠저린> (2015)의 LA에서 플로리다를 경유하여 아메리칸 드림의 허실을 이야기하다'

션 베이커 감독은 <탠저린> (2015)에서 웨스트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LA의 민낯을 그려냈다면, <플로리다 프로젝트> (2017)에서는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디즈니 월드의 환상 뒤 가려진 미국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영화 제목은 디즈니 월드의 'Sunshine State Theme Park' 초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부동산 사업자로도 성공을 거둔 인물인데, 디즈니 월드의 일부 테마 파크를 실제 주거공간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 주거공간은 디즈니 월드가 모든 이에게 환상을 주는 것과 달리 특권을 누리는 일부 계층을 위한 공간이었다. 잔혹한 현실은 디즈니 월드가 주는 꿈과 환상 뒤에 숨어 미국이라는 국가가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인식되게 만든다. 그러나, 션 베이커 감독은 <탠저린>에 이어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가려져서 안 보이는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하위문화를 향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이야기로 보여주려고 한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는 음악보다 색감이 중요하게 다루었는데, 이는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담아내는 션 베이커 감독의 프로젝트에 주효하게 작용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션 베이커 감독의 가치관

전작 <탠저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위문화 집단에 속한다.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매춘으로 하루 벌어 먹고사는 트랜스젠더, 지하 경제에서 마약 거래를 주도하는 약쟁이, 그리고 LA에 이민 온 아르메니아인 택시 운전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가정 배경, 교육 수준, 성별, 인종, 성소수자 등의 이유로 하위문화에 속하게 된다. 션 베이커 감독은 하위문화 혹은 소수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살아남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 그가 강조하는 부분은 하위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 때문에 절대로 타자화(stereotype)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영화에서 그들이 무조건 착한 도덕성만 가지고 있으며 어딘가에서 영웅 한 명이 등장할 거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믿는다. <탠저린>과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둘 다 보고 나면, 션 베이커 감독은 영화의 끝에 '이들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라는 의제를 절대로 던지지 않는 대신 그들을 통해 미국의 특정 도시 혹은 전반적인 미국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환상이 무엇이고 가리려는 민낯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디즈니 월드 건너편 '매직 캐슬', 보라색으로 페인트 칠 된 벽을 뚫고 드러나는 무거운 현실

디즈니 월드 건너편에는 모텔 매니저 바비(윌렘 대포)가 보라색 페인트로 칠한 '매직 캐슬'이 위치해 있다. '매직 캐슬'은 디즈니 월드를 방문하는 관광객을 위해 지은 건물이었겠지만, 현재는 빈곤한 사람들의 임시 거처로 전락해버렸다. 6살 소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는 친구 같은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 무니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디즈니 월드를 가지 못하지만 친구 딕키(에이든 말릭),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그리고 젠시(발레리아 코토)와 함께 모텔촌과 거리들을 자신들의 놀이터로 삼으며 가장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며 천진난만하게 하루를 보낸다. 보라색으로 페인트 칠 된 벽이 서서히 벗겨지는 것처럼 무니의 친구들은 점차 한 명씩 사라지게 된다. 이를 중심으로 눈에 띄게 특별한 스토리 없이 매일 발생하는 에피소드들로 아이들과 어른들의 삶을 확인하게 된다.

일상생활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미소와 장난이 무니의 친구들이 한 명씩 사라지면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보라색으로 가려진 무거운 현실의 모습이 하나둘씩 노출되기 시작한다. 아이들 앞을 기웃거리는 소아성애자가 등장하고, 핼리는 점차 식비와 여관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지자 도둑질을 하거나 고급 호텔 앞에서 하는 호객행위의 빈도를 높이지만 도저히 이 방법으로도 돈을 벌기 힘들자 성매매 시장에 발을 들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모텔촌에서 겨우 먹고 지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삶에 지쳐 얼굴에는 피로의 빛이 역력했다. 특히, 현실이 위태롭고 무겁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은 모텔 매니저 바비다. 바비는 모텔 주인에게 매직 캐슬을 구석구석 확인하고 쉴 새 없이 보수 작업을 하며 매일 바쁘게 살아간다. 무니와 친구들 그리고 핼리 때문에 조용한 날을 보낼 리가 없지만 바비는 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바비는 그들을 도와주고 곁에서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도 자기 앞가림을 하느라 남을 도와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힘든 현실은 바비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매일 깊어지는 주름과 함께 바비는 묵묵히 담배를 피운다.

닿을락 말락 하다가 멀어지는 무지개, 절박한 상황에 놓인 무니를 의미하다

무니는 엄마, 바비 아저씨, 그리고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러나, 딕키가 플로리다를 떠나게 되고, 스쿠티는 지나친 장난으로 인해 화가 난 엄마 애슐리(멜라 머더)에 의해 떼어지게 되욌다. 점차 친구들을 잃게 된 무니는 아동가족보호국의 조사로 인해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없게 될 위기를 맞는다. 항상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던 무니도 자신의 눈 앞에 놓인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만약, 자신이 지금 '매직 캐슬'을 떠나게 되면, 아동가족보호국 직원들의 말과 달리 이 공간에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공간을 공유한 사람들과 영영 헤어지게 될까 봐 무니는 극심하게 두려워한다. 두려움과 절박함을 느낀 무니는 돌아오라는 아동 복지국 직원들의 말을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데, 달리는 무니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그동안 닿을락 말락 했던 무지개가 점점 멀어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눈물을 흘리는 무니, 그런 무니의 손을 잡고 디즈니 월드로 뛰어가는 젠시... 그러나...

절박해진 무니는 친구 젠시에게 달려가 자신을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다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젠시는 정확하게 무니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무니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래서 젠시는 무니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고 손을 잡고 디즈니 월드로 숨 가쁘게 도망간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디즈니 월드라는 환상의 공간을 뛰어다니지만, 둘은 자기들을 떼어놓으려는 공간에서 최대한 멀리하기 위해 손을 잡고 달린다. 무니와 젠시가 현실의 공간에서 디즈니 월드라는 환상의 공간으로 뛰어가는 장면은 조그마한 희망을 뜻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이들이라도 위태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뛰놀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디즈니 월드 안에서 목격되는 대조적인 두 모습은 우리의 마음과 달리 슬픔을 예견하는 듯하다. 

션 베이커 감독은 <탠저린>의 LA에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플로리다를 경유하여 미국 사회의 이면을 드러낸다. 특권을 누리는 일부 계층들에 의해 가려진 아메리칸드림의 허실은 심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덕분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미소를 띠게 되지만, 환상 뒤에 숨은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미소 짓는 표정은 서서히 무거운 표정으로 바뀐다. 걱정 없이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어린아이들마저도 어른들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느끼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낄뿐더러, 이런 아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무력감을 느낀다. 션 베이커 감독이 담아내는 하위문화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실제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