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서, <리틀 포레스트>

2019. 9. 9. 09:00주목할 만한 시선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서툴러도 괜찮아!'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리틀 포레스트>의 원작은 작기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다. 사실 이 만화는 일본에서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2014)과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 (2015)으로 영화화된 적이 있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을 요리하는 과정을 길게 보여주는 것보다 인물들의 이야기에 좀 더 무게를 둔다. 그래서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과 비교했을 때 아쉬움을 느낄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비춰주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그려냄으로써 휴식과 위로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경쟁 사회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영화로 다가올 것이다.

 지쳐서, 숨 고르고 싶어서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 

"배고파서..."

혜원(김태리)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임용고시에서 떨어지고, 남자 친구와 점점 서먹해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울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일이 되지 않자 혜원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꼬인 생각들을 정리하고 숨 고르기 위해 고향으로 잠깐 돌아간다. 오랜만에, 혜원은 친구 은숙(진기주)을 만나는데, 은숙은 혜원에게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는다. 이에 대해, 혜원의 대답은 "배고파서"였다. 은숙은 당연히 이 대답이 혜원이 고향에 돌아온 진짜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혜원의 "배고파서"라는 대답은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 중 하나이긴 하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 혜원이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밖에 없었는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봤자 의식주를 해결할 넉넉한 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 매일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니 혜원은 배고픔 해소는커녕 계속 허기가 진다. 대학생이 된 이후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혜원은 그곳에서 자신이 직접 키운 작물들로 한 끼 한 끼 만들어 먹는다. 

새로운 생활 방식을 연습하고 점차 적응해 가는 혜원

혜원은 잠깐 머리 식히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어쩌다 보니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가을에서 다시 겨울로 계절이 바뀌어도 그곳에 머무른다. 시골 동네는 서울과 달리 식재료를 구입할 대형 마트가 없기에 자전저를 타고 멀리 이동을 해야 하므로, 혜원은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기 위해 스스로 농작물을 키우거나 산을 올라 고사를 꺾거나 다른 자연 식재료를 구한다. 도시 생활과 달리 혜원은 한 접시의 음식을 먹기 위해 때로는 몇 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리며 점차 느리고 잔잔한 생활 리듬에 적응해 간다. 그리고, 혜원은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귀향해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재하(류준열)와 직장 상사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는 은숙과 삶을 공유하면서 서울 생활로 인해 잃었던 웃음을 점차 찾기 시작한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비로소 무언가를 깨닫는 혜원

겨울에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사계절을 보내며 여기서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혜원은 새로운 생활방식을 연습하고 적응하면서 배고픔을 잊어가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여기에 내려온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능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자신을 두고 갑자기 집을 떠난 엄마(문소리)와의 기억을 마주하면서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보내야 할 무기력한 생활이 두려워 무의식적으로 고향에서 고민을 미뤄두고 도피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가을 어느 날 재하가 자신에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심적으로 도피 중인 혜원을 깨우게 되고, 혜원은 자신이 여기에 온 진짜 이유를 찾는 일을 재개한다. 감 껍질을 깎아 자연 바람을 맞도록 바깥에 널며 곶감이 되는 긴 시간을 보내던 중,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닫는다. 일상생활에 지쳤다고 해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한 삶을 선택하기 위해, 그리고 남들의 기대에 기대거나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내려왔다는 사실 말이다. 게다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가 집을 떠나면서 남겼던 편지 한 장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엄마가 본인의 작은 숲을 찾아 가꿨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러한 삶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혜원은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아주심기'와 같은 첫 발을 내딛는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삶의 리듬을 찾기는커녕 타인의 리듬을 쫓아가려고 앞만 보며 달리다가 무기력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비춰주는 동시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주는 마음의 쉼터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위로를 건넨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 재하, 그리고 은숙은 이십 대를 지나고 있는 청춘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세대가 이 영화를 통해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 흐름, 그리고 속도는 다르다.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부담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모두들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서툴러도 괜찮으니까 삶의 의미를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가져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