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채집하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에이싱크>

2019. 9. 12. 09:00주목할 만한 시선

류이치 사카모토는 <마지막 황제> (1987)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으로 제6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제4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그리고 기타 유수 영화제를 석권했고, 세계적인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활동 중이었다. 그런데, 류이치 사카모토는 새로운 정규 앨범을 작업하는 도중 인후암 3기 판정을 받게 되었고, 결국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하지만, 본인이 평소에 존경하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으로부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5)의 작업 의뢰를 받게 되었고,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 작업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한다. 그는 치료 때문에 중단했던 새 앨범 작업을 다시 진행하는데, 대신 기존에 했던 구상을 다 엎고 다시 시작점에 서기로 결심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코다'에 함축된 의미처럼 시작점에 돌아온 그가 과연 어떤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과 관련된 철학이 어떻게 음악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지 고심하는 모습을 다룬다.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는 이와 같은 그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는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로, '에이싱크(ASYNC)'는 항암 치료를 병행하며 만든 새 정규 앨범이자 가장 사적인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연결 지어 생각해 본다면, 아티스트로서의, 철학가로서의, 활동가로서의,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의 류이치 사카모토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음악을 작곡하지 않는, 대신 채집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네이버 검색창에 '류이치 사카모토'를 검색해보면, 그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단순히 곡을 작업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작곡하다'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작곡하다'라는 단어에는 '만들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1년이라는 활동 중단 기간 동안 음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그에게는 '작곡하다'라는 단어는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류이치 사카모토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고통,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삶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소리를 모으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채집하다'라는 단어가 굉장히 어울린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이상일 감독의 <분노> (2016)를 돌이켜보면, 정말 '채집하다'라는 단어가 더 합리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인간 문명의 갈등을 고민하는 그의 태도는 아티스트로서 성공을 이미 맛봤음에도, 지나치게 산업적인 색깔이 짙은 음악을 지양하는 대신 세상을 담아내는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만약, 그가 작위적인 소리에 집착했다면, 그의 영화 음악에 감탄하는 사람의 수는 점차 감소했을 것이다.

다시 시작점에 선 류이치 사카모토의 성과이자 현재 진행형인 '음악을 채집하다'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인후암 판정을 받고 모든 활동을 중단한 후 8년 만에 발매한 '에이싱크(ASYNC)'라는 정규 앨범을 갖고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가진 콘서트 실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그의 음악적인 고민이 어떠한 성과로 이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게 돕는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비동시성, 소수, 혼돈, 양자물리학 등을 활용하여 자신의 채집한 음악을 오직 200명의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중간에 인터미션 없이 65분 동안 'Andata', 'Disintegration', 'Solari', 'Zure', 'Walker', 'Stakra', 'Ubi', 'Fullmoon', 'Async', 'Tri', 'Life, Life', 'Honj', 'Ff', 그리고 'Garden'을 들을 수 있다. 14개의 사운드 트랙을 들으면서 단순히 행복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심오한 음악적 고민에 감탄하게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음악을 채집하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류이치 사카모토 관련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면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우리는 삶과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찾기 위해 연구하고 그런 소리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