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얼마나 바뀌지 않았는가? <디트로이트>

2019. 9. 13. 19:00주목할 만한 시선

<허트 로커> (2008)와 <제로 다크 서티> (2012)로 긴장감 넘치는 리얼리티를 구현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숨 막히는 리얼리티 3부작의 정점을 찍는 <디트로이트>로 5년 만에 돌아왔다. <디트로이트>는 1967년에 발생한 폭동으로 인해 뜨거웠던 디트로이트에서 벌어진 알제 모텔 사건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설 경비원 멜빈 디스무케스(존 보예가)와 피해자 중 한 명이었던 줄리 앤 하이셀의 진술을 바탕으로 극화한 작품인데, 당시 목격자와 피해자의 진술만 참고했다는 점에서 일부 북미 평론가는 이 영화를 편향된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에 등장하는 엘제 모텔 안과 밖에 있었던 흑인, 백인, 시 경찰, 주 경찰, 방위군 등 다양한 인물들의 존재는 이 영화가 절대로 편향된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게 아닌, 오히려 다양한 입장에서 사건의 본질을 꿰뚫음으로써 1967년 미국 사회가 2018년 미국 사회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67년 7월 23일, 공공연히 행해진 인종차별로 인한 피해 의식이 폭동으로 번지다

피해 의식은 종종 피해망상과 잘못 혼동하여 쓰이기도 하는데 피해망상과 달리 피해 의식이라는 용어는 재현이 힘든 영역에서도 자신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심리적인 경향성을 보이지만 현실 검증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역사에서 충격적이었던 사건 중 하나인 디트로이트 폭동이 발생하게 된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피해 의식이다. 1967년 7월 23일 새벽에 디트로이트 경찰은 무면허 음주 클럽을 급습해 베트남 전쟁에서 귀환한 참전 용사를 위해 파티를 열어 즐기던 수십 명의 흑인을 체포한다. 문제는 경찰은 본인들이 해야 하는 일을 책임지고 하고 있었을 뿐인데 연행하는 과정만 지켜본 다른 흑인들이 이에 대해 격노하기 시작하면서 경찰을 향해 병을 던지고, 주위 상점을 부수는 등 폭력적인 행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디트로이트는 사회의 억압적인 태도 때문에 웅크려 있던 흑인들의 분노로 불타기 시작했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해 시 경찰뿐만 아니라 주 경찰과 미시건 주 방위군 등이 합류했다. 영화는 폭동이라는 일어나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서 지속해서 핸드헬드 카메라를 활용해서 리얼리티를 구현하고 장 뤽 고다르가 잘 사용했던 점프 컷(jump cut)을 이용함으로써 관객들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의 외관이 아닌 본질을 들여다보도록 유독한다. 디트로이트 폭동의 심각성은 이 영화의 주요 사건인 알제 모텔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과 함께 커진다.

영화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관객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반드시 들어가야만 했던 공간 '알제 모텔'

20세기 미국에 거주하던 흑인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21세기 미국의 흑인들의 삶은 여러 매체에서 활약하는 것을 미루어 보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와 같은 판단이 과연 옳은 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이를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얼마나 바뀌지 않았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발전시켰다. 근데,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단순히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담론을 펼치거나 펼치기 위한 공간이 마련할 필요가 있었는데, 영화는 이를 위해 알제 모텔 사건을 40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해서 다룬다. 알제 모텔에서 칼 쿠퍼(제이슨 밋첼)가 발사한 육상 경기 출발 신호용 화학 총의 소리가 경찰과 방위군을 자극시켰고, 결국 방위군보다 일찍 모텔에 도착한 디트로이트 경찰 필립 크라우스(윌 폴터), 플린(벤 오툴), 그리고 데멘스(잭 레이너)가 모텔에 투숙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위협하며 1층 복도로 몰아낸다. 

문제는 폭력을 사용해서 공포와 위협으로 상황을 진압하고 모텔에 없는 저격수를 있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라도 자백을 받아내려던 백인 경찰들의 태도로 인해 악화된다. 윌 폴터가 연기한 필립 크라우스는 아주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흑인들이 보이는 모든 행동을 무조건 수상하게 판단하여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피해자, 목격자, 그리고 가해자가 모두 모여 있는 알제 모텔이라는 공간만이 갖는 특수성은 디트로이트라는 넓은 장소의 범위와 달리 폭동과 차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어느 한 방위군은 "그러면 안 되지. 인권이 있는데"라는 말을 함으로써 디트로이트 경찰의 행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지만 이를 해결하지 않고 모텔 밖으로 나감으로써 사건을 목격했지만 방관함으로써 결국 폭력을 묵인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더 나아가, 약간 샛길로 빠져 이야기하자면 경찰의 차별을 기반한 폭력성은 여성을 노골적으로 성 상품화의 태도로 바라보는 남성 권력 중심 사회의 모습을 짧게 묘사한다. 이와 같이,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특유의 냉철하고 절제된 시각과 함께 반복적인 클로즈 업 쇼트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사건의 본질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물리적인 공간에서 심리적인 공포를 느끼게 함으로써 서서히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디트로이트 폭동이 어느 정도 진압되었지만 가해자와 방관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그날이 끝나지 않았다. 무죄 선고를 받은 경찰관들은 고작 복직하지 못한 것만으로 죗값을 치른 반면, 알제 모텔 사건으로 친한 친구를 잃은 흑인은 충격과 큰 상심에 빠져 가수라는 꿈을 포기하고, 일상생활을 살아가던 중 아들의 죽음으로 큰 절망에 빠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해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들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다가 2차 가해를 당했다. 심지어, 모텔 사건을 진압하면서도 폭력이 아닌 정직하고 침착한 태도를 보였던 멜빈 디스무케스는 백인 경찰이 저지른 살해 사건의 목격자였음에도 용의자로 의심받는데, 백인 경찰 세 명과 달리 용의자이지만 거의 가해자 취급받으면서 당연한 권리인 변호사 선임 권리마저도 강제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된다. 흑인에게 억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불리한 입장으로 몰고 가는 사회 분위기는 5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제 45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악화된 혐오와 차별적인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틱스에  돌아가지 않고 교회 성가대 일원이 된 래리 리드(알지 스미스)가 가스펠송을 부르며 보이는 눈빛과 무언가를 허망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간접적으로 대답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