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으로부터 당신의 취향과 생각은 안녕한가요? <소공녀>

2019. 9. 14. 19:00주목할 만한 시선

성공을 갈망하는 것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성공은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리는 것으로 치부된다. 게다가, 현대인들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곧 자신의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여가 활동을 포기하고, 자신의 생각을 포기한 채 기계적으로 일한 나머지 우리의 바람대로 돈을 많이 벌어들여도 우리 마음은 그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현대사회에서 연애, 결혼, 출산, 집 마련 등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인 이유 때문에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N 포 세대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비극을 고려했을 때, <소공녀>의 미소(이솜)는 굉장히 독특한 인물로 당연히 느껴질 수밖에 없다. 미소는 상황이 점차 어려워져도 집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만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가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계속 이어간다. 그러므로, 미소를 보며 우리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는 과연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는 하루 한 잔의 위스키, 담배 한 대,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 한솔(안재홍)이 자기 곁을 지켜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제야의 종이 울린 다음 곧바로 물가가 올랐다. 담배 가격, 위스키 가격, 그리고 집값까지 모두 올랐다. 미소는 가계부를 살펴보다가 자신의 확고한 취향과 생각을 지키기로 결심했고, 결국 월세 집을 떠난다. 머무를 곳이 없는 미소는 대학생 시절 밴드를 같이 했던 동료들을 찾아 나선다.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문영(강진아), 고시 공부 중인 남자와 결혼한 현정(김국희), 결혼했지만 얼마 안 가 이혼 위기에 빠진 대용(이성욱), 나이가 찼지만 여전히 결혼하지 못하고 부모님 집에 머무는 록이(최덕문), 그리고 재산이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호화롭게 사는 정미(김재화)를 순서대로 만난다. 항상 계란 한 판 사들고 밴드 동료들을 만나는 미소는 갈 데가 없어서 떠돌면서 지내고 있느냐는 소리 혹은 담배와 술을 포기하지 못해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이러한 소리는 우리의 관점에서 미소의 삶을 함부로 평가한 것이다. 미소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녀는 부의 크기와 상관없이 소소하지만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실천해 나가는 여행을 떠난 것이다. 처음에는 미소의 밴드 동료들이 부러울지 몰라도, 결국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잘 웃지도 못하는 그들과 달리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미소를 보며 여행 중인 미소가 부러우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성공과 행복의 종착지로 여기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행복하니?"

미소는 밴드 동료들의 집을 떠나기 전 항상 뒷면에 작별 인사가 적힌 사진 한 장을 놓는다. 그 사진에는 능동적이고 열정적으로 지냈던 청춘시절과 달리 이리저리 눈치 보고 살아가거나 남들처럼 살려고 하다가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향한 미소의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있다. 고시 준비하는 남편과 시부모님 뒷바라지를 하느라 피곤에 절어있느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했는지 잊고 사는 친구, 남들처럼 결혼하고 집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주택 자금을 대출했다가 도리어 힘든 상황에 놓인 동생, 권태롭게 집에 눌러 앉혀 사는 오빠, 겉으로는 호화로운 삶을 누리며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남편 눈치 보느라 스트레스받으며 사는 언니를 보며 미소는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가진 게 없는 미소지만 사진 한 장과 글로 한때 뜨거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주체적이고 자신의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결국, 그녀의 소소한 선물은 척박한 도시에서 우리가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쉼터이며 잠깐 멈추고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며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계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행복하니?"라는 말이 다소 날카로운 어조로 다가오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다가온다. 

"힘들어도 꿈을 포기하지 말자. 포기라는 말 대신 잠깐 쉬어간다고 말하자."

미소는 어느 날 슬픈 소식을 접한다. 사랑하는 남자 친구가 웹툰 작가가 되는 꿈을 멈추고 자신과 함께 지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 벌려고 2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미소는 집이 없어도, 그리고 맛집 투어를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남자 친구가 자기 곁에 있어준다면 굉장히 행복하지만, 해솔은 미소가 자기 때문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해 미안해서 자기 꿈을 포기하고 돈 벌려고 한다. 결국, 미소는 해솔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하고 잠깐 동안의 이별의 순간을 맞이한다. 근데, 미소는 그림 노트 한 권을 해솔의 손에 쥐어준다. 미소는 남자 친구가 그림 그리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림을 꾸준히 그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해솔은 미소를 위해 꿈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미소는 주변 사람과 사회 시선 때문에 꿈을 접고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며 평소 가치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미소가 건네는 노트 한 권은 '포기'라는 말 대신 '쉬어가기'라는 의미로 읽힌다. 

<레이디 버드>와 <소공녀> 관람을 통해 나도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예술/독립 영화를 수입 및 배급하는 배급사에 취직해서 내 열정을 쏟아붓는 게 내 꿈이지만 무조건 교사를 하기 바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교육 분야를 향한 여전한 관심 때문에 끊임없이 진로 고민 중인데, 갈림길에 서서 아직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나도 모르게 심적으로 몹시 피곤한 상태에 빠져 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취향을 고수하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미소의 모습과 배려심이 깊은 미소의 언행이 어느새 나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앞으로도 진로 때문에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지만, 미소가 일깨워준 진정한 행복의 의미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덕분에 서서히 앞으로 전진할 수 있을 거라 스스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