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과 나의 세계에게: <페인 앤 글로리>

2020. 1. 23. 03:04짧게라도 남기고 싶은 영화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제72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겼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페인 앤 글로리> (2019)는 감독 본인의 메타 인지적 태도가 반영된 작품이다. 영화를 못 찍는다면 인생은 의미가 없을 만큼 극 중 '살바도르(안토니오 반데라스)'에계 삶은 예술이고, 예술이 삶이다. 그런데, 그는 꾸준히 각본 작업을 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기 자신을 어두운 동굴 속에 몰아넣은 채 생활하고 있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본인이 만들어낸 주인공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거장이 된 현재 시점에서 지금까지 지나쳐 온 시간과 본인이 만들어낸 세계를 되돌아본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를 구성하는 여러 쇼트 중에서 잠수 중인 살바도르의 등에 난 상처를 아래에서 위로 훑는 쇼트가 있는데,  몸에 새겨진 상처는 한 사람이 살아온 생애의 역사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쇼트는 그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스스로 잠몰의 삶에 가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삶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살바도르가 감독으로서 성공했지만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된 계기는 어머니와의 시간과 전 애인 '페데리코(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와의 시간과 관련이 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좋은 아들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과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게 살바도르의 부채 의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과거에 페데리코를 정말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랑만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이별을 택하며 최근까지 괴로워했다. 이와 같은 슬픔과 고통이 축적되면서 살바도르는 잠수를 오래 하듯이, 그림과 집에 갇혀 살듯이, 어둠 속에만 지내듯이,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마약에까지 손을 댈 정도로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울러 수많은 질병을 앓으며 심신이 약해진 살바도르의 상태는 그의 삶을 쉽게 유추하게 만든다. 그러나 32년 전에 만든 본인 작품이 리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다시 공개되면서 그는 자기가 미워했던 배우 '알베르토(엑시어 엑센디아)'와 오랜만에 재회하게 되는데, 그날 이후 살바도르는 유년 시절을 포함한 자신의 과거와 천천히 조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더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애수를 감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로소 강렬했던 첫사랑의 순간에 도착하면서 살바도르는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되었고, 작품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활기를 되찾은 살바도르의 시간과 세계의 생동감은 '첫 번째 소망'을 촬영하는 연출자 위치에서 확인할 수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