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이야기 <레이디 버드>

2019. 9. 18. 19:00주목할 만한 시선

<프란시스 하> (2012), <매기스 플랜> (2015), <재키> (2016), <우리의 20세기> (2016)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개성 있고 매력 넘치는 배우로 알려진 그레타 거윅이 <레이디 버드> (2018)로 영화감독 데뷔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난 뒤 고향을 향한 엄청난 사랑의 깊이를 깨달았고, 이 마음을 갖고 새크라멘토에 러브 레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비록, <레이디 버드>가 그녀의 실제 경험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고향을 향한 마음, 자신의 유년 시절과 정서를 그녀다운 유머와 함께 솔직하게 전달했다는 점에서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섹션으로 상영된 켈리 프레몬 감독의 <지랄발광 17세> (2016)보다 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17살을 회상할 수 있었던 좋은 영화였다. 

"I am Lady Bird"

17세 소녀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엄격한 가톨릭 학교, 가난한 가족, 그리고 몹시 지루한 동네 때문에 본인의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동부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꿈꾼다. 따분한 자신의 현재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크리스틴은 부모가 지어준 본명마저도 싫어해 자기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촌스러우면서도 반항기 가득한 이름을 짓는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크리스틴은 엄마 매리언(로리 멧칼프)과 자주 충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단순히 철없는 사춘기 소녀의 일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동부 혹은 새로운 지역에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으로 연결 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욕망은 아까 언급한 자기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붙인 행위와도 연관이 있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집과 반대로 크고 아름다운 집을 구경 다니고, 친구와 함께 학교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남자 친구를 사귀면서 성에 엄청난 호기심과 관심을 갖는 등 자신의 일상을 둘러싼 엄격함과 지루함을 깨부수려고 노력하며 18세를 향한 통통 튀지만 사랑스러운 여정을 떠난다. 

친구 관계보다 가족 관계에 더 주목하게 되는 이유

도입부에 언급한 영화 <지랄발광 17세>는 짓궂으면서도 유쾌한 사춘기 소녀의 예민한 성격을 중심으로 친구 관계에 다소 치우쳐져 있다면, <레이디 버드>도 <지랄발광 17세>처럼 친구와의 관계를 마찬가지로 다루고 있지만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아빠와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유쾌하게 풀어내다가 나중에 떠남의 정서를 다루는 순간 엄청난 공감의 눈물을 이끌어낸다. 엄마의 잔소리가 관심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엄마가 뉴욕에 있는 대학교가 아닌 새크라멘토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를 끈질기게 바라는 마음도 딸을 멀리 보내지 않고 근처에서 두고 싶은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크리스틴은 눈물을 흘린다. 

모녀 관계뿐만 아니라 크리스틴과 래리(트레이시 레츠) 간의 부녀 관계도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한다. 정리 해고 때문에 오랜 기간 불안 속에 살고 결국 실직자가 되자 우울증이 심해진 래리는 딸의 꿈을 응원해주고, 자기보다 젊은 사람한테 굴욕을 당해도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가 그 현장을 목격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듯이 집에 돌아온다. 아빠의 우울증도 모르고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바라본 크리스틴은 뉴욕에 도착한 뒤 새크라멘토에서 걸려온 아빠의 전화 한 통과 과음으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간 뒤 깨어났을 때 바라본 어느 모자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아빠의 마음을 이제라도 알게 된다. 게다가. 그동안 자기 이름에 불평불만을 갖고 지내던 크리스틴은 자기 이름을 지어준 부모에게 감사함 마음을, 그토록 지루해하던 성당에서 위로를 받으면서 가족과 고향 새크라멘토를 향한 깊은 사랑을 느낀다. 이 떠남의 정서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리고 군대에서 내가 느낀 떠남의 정서과 연결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힘들어도, 흔들려도... 포기하자 말자, 어디론가 떠나자

비싼 대학 등록금, 취업난에 시달리는 아빠와 오빠, 생계난에 힘들어하는 엄마, 지긋지긋한 삶이 반복되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어쩌면 현재 소시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말고 햔제 삶에 충실해야 하며 각자 꿈을 향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모르고 있던 소중한 감정과 잊고 있던 주변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며 힘든 현실을 극복할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그레타 거윅이 출연한 <프란시스 하>와도 연결된다. 특히,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과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의 이미지가 서서히 겹쳐 보인다. <레이디 버드>에서는 트래킹 쇼트로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 거리를 걷는 장면과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운전면허증을 따고 자신의 고향과 동네를 돌아다니는 장면을 좌측에서 우측 방향으로 찍었다면, <프란시스 하>에서는 트래킹 쇼트로 뉴욕 거리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장면을 반대 방향으로 찍었다. 이는 17살 소녀 크리스틴과 27살 성인 프란시스가 서로를 향해 이동하는 것으로 읽히는 동시에, 고향을 떠나 뉴욕으로 넘어온 두 사람이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세상에서 서로에게 격려의 포옹을 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이미지는 내가 레이디 버드가 되어 사춘기 시절 '나'에게 '넌 잘 지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사춘기 시절 '나'는 현재의 '나'에게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마'라는 위로로 작용한다.  그래서, 결국 <레이디 버드>는 타인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 매일 힘든 하루를 보내면서 쉽게 지치고 피곤했지만, 이 시기에 본 <레이디 버드>는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