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길을 잃은 사람들 <수성못>

2019. 9. 19. 19:00주목할 만한 시선

유지영 감독의 <수성못> (2017)을 2년 전에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처음 관람했었다. 이 영화가 개봉하면 다시 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두 가지 분류의 사람을 통해 현대인들의 실패담을 전달하는 방식이 이야기를 약간 예측하기 힘들게 풀어갔지만 차츰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 사회는 청춘들이 보여주는 열정의 동기가 될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마음의 병을 앓게 됨으로써 거대한 세상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현대 사회는 N 포 세대 수의 증가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하려고 한다. <수성못>은 사회를 수성못으로, 현대인들을 수성못에 갇힌 오리배로 비유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이러한 모습을 다루는데, 다만 유머를 통해 비관적인 현실을 그려낸다. 그래서, '시종일관 죽음이 감도는 명량하고 괴이한 데뷔작'이라는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평에 강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아가려는 자, 죽으려는 자

<수성못>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살아가려는 자, 또 다른 하나는 죽으려는 자다. 우선, '살아가려는 자' 그룹을 대표하는 희정(이세영)은 대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대구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대구 토박이다. 희정의 현재 목표는 서울 소재 대학교에 편입하는 것이라서, 그녀는 열심히 공부하는 와중에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그리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한다. 반면, 영목(김현준), 희정의 남동생 희준(남태부)과 박씨(강신일)는 '죽으려는 자' 그룹을 대표한다. 영목은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를 지켜보면서 인생이 본인에게는 참 허망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단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자살 시도를 실패한 영준은 다시 자살을 꿈꾸면서 자살 클럽을 운영한다. 희정에게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희준은 집과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하면서 독서로 하루를 보낸다.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거나 아예 찾으려는 노력 조차 안 하는 희준은 어느 날 인터넷 카페에서 영목이 운영하는 자살 클럽 사이트를 발견해 거기에 가입한다. 박씨는 영목과 희준과 다르게 성공한 사업가다. 하지만,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아왔음에도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을 배신하는 아내 때문에 허망함을 느끼고 끊임없이 자살 시도를 한다. 이렇게 수성못 주변에 살아가려는 자와 죽으려는 자가 같이 배회하지만, 두 그룹은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대척점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기력하게 있어도, 아무리 격렬히 발버둥 쳐도 결국 기다리고 있는 건 '곤경(Predicament)'

희정은 열심히 영단어를 외운다. 특히, 그녀가 형광펜으로 강조하면서까지 꾸준히 외우고 있는 단어 중 하나가 '곤경(Predicament)'이다. 희정이 대구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라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있었으면 하는 소망 혹은 의지다. 안타깝게도 의지와 달리, 희정은 수성못에 투신자살을 시도하려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기점으로, 영목에게 붙잡히게 되어 그를 따라다니다가 해고를 당하고, 편입 시험 당일에는 모르는 남성한테 영문도 모른 체 주먹을 맞고 억울하게 지갑을 소매치기당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서울 소재 대학교 편입 시험에 떨어지면서 좌절, 허망, 그리고 울분이 뒤섞인 파도에 휩싸이게 된다. 짠내 나지만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결국 곤경의 늪에 빠진 희정이 결국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우는 것밖에 없으며, 그녀의 처지는 위에서 말했듯이 수성못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그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오리배의 처지와 같아진다. 그리고, 이는 대척점에 놓인 줄 알았던 살아가려는 자와 죽으려는 자의 그룹이 실은 바로 옆에 서있음을 알려준다.

희정은 어떻게 될까?

열심히 달려왔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희정은 이제 방황하기 시작한다. 연못가 벤치에 앉아서 절망에 잠긴 희정에게 박씨가 다시 등장한다. 죽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박씨의 현재 상태는 <수성못>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희정에게 박씨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근데, 박씨가 말하는 집이 과연 무엇일까? 박씨의 모호한 현재 상태는 관객들로 하여금 부모님과 희준이 있는 집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끝이자 시작을 위한 단계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수성못 귀신 이야기에 따르면 누군가 기타 치는 아저씨의 환영을 봤을 때 그리고 아저씨의 기타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호수로 투신자살한다고 한다. 희정은 박씨와의 대화 도중 기타 소리를 듣게 되었고 기타 치는 아저씨의 환영까지 보게 되었다. 만약, 박씨가 죽은 자라면, 수성못 귀신 이야기에 따라 희정은 과열된 경쟁 사회에서 좌절하고 결국 자살을 택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반면, 박씨가 죽은 자가 아니라면, 희정은 수성못 귀신 이야기에서 묘사된 현상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감에 잠몰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희정과 비슷한 나이 때인 나로서는 그녀가 좌절감을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다시 뛰길 바랄 뿐이다.

<수성못>은 밝은 척하는 어두운 영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위로를 건네는 영화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그들의 실패담을 외면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와 공감하려는 자세에 감사함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라는 점을 이 영화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