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을 추적하는 게 핵심이 아닌, <서치>

2019. 9. 4. 18:00주목할 만한 시선

올해 열린 제34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서치>는 당당히 관객상을 거머쥐었고, 지난 5월에 열린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미드나잇 인 시네마' 섹션에 공식 초청되어 영화제를 방문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다. 이전부터 PC 화면을 스크린에 구현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아니쉬 차간티 감독처럼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부터 엔딩 시퀀스까지 온라인과 영상기기 화면으로만 채워진 영화는 없었다.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 스카우트되어 각종 구글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현대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스크린 라이프(screen-life)', 즉 새로운 영화 문법을 영리하게 활용함으로써 이야기를 강한 인상과 함께 효율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비록 <서치>는 실종된 자식의 행방을 추적하는 부모의 여정이라는 너무나 친숙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서스펜스의 신세계를 개척한 참신한 형식 덕분에 영화에 몰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치>의 표면적인 이야기: 실종된 딸의 행방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숨 가쁜 여정

오프닝 시퀀스는 데이빗(존 조)이 아내 파멜라(사라 손)과 딸 마고(미셸 라)과 함께 보냈던 행복한 순간부터 슬픈 순간까지를 녹화한 동영상, 영상통화, 문자 메시지, 윈도우에 깔린 기본 작업 스케줄러 등을 활용해 재빨리 요약한다. 바로 다음 장면은 시간이 흘러 딸 마고와 오로지 페이스타임이나 문자메시지로 대화하는 데이빗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로지 미디어만 활용해 가족 관계의 변화를 드러낸 다음, 곧바로 스터디하러 외출한 마고가 갑자기 실종된 사건으로 이야기가 급격히 전환된다. 숨 쉴 틈 없이 페이스북 댓글, 구글, CCTV 화면, 인터넷 방송, 유튜브 등으로 수사 진행 상황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데이빗과 로즈메리 빅 형사(데브라 메싱)의 영상 채팅 장면과 전화 통화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극심해지는 데이빗의 두려움을 묘사한다.

특히, 거듭된 반전을 일으키기 위해 빠르게 국면을 전환하는 방법을 선택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전략은 <서치>의 핵심이 실종 사고의 범인을 추적하는 일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SNS 활동 기록으로 한 소년을 의심하는 장면, 의심되는 친동생 피터(조셉 리)의 집에 여러 대의 초소형 카메라르 설치해 증거를 확보하려는 장면, 익명의 힘을 빌려 무조건 데이빗을 의심하는 댓글들이 쏟아지는 장면 등이 빈틈없이 계속 제공된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실종 사건을 둘러싼 여러 명의 용의자 중 누가 범인인지를 골똘히 추측하는 데에만 정신을 쏟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범람하는 여러 온라인과 영상기기 화면을 멀리 떨어져 본다면,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메인 플롯이 아니라 서브플롯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혹은 그 이야기는 맥거핀은 아니지만 맥거핀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치>의 실질적인 이야기 1: 자발적으로 타인 감시를 허용하게 만드는 SNS 문화의 문제 지적

다양한 SNS 플랫폼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이나 취미 생활을 주변 지인뿐만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삶을 사진이나 동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하는 일은 나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윙클의 신부> (2016)의 주인공 '나나미(쿠로키 하루)'처럼 어느 순간부터 SNS을 통해 자신의 삶을 거짓말을 하거나 관심을 받기 위해 조작하는 현대인이 많아지고 있다. <서치>에서는 데이빗의 딸 마고가 페이스북을 포함해 각종 SNS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포장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SNS 세상에서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 척을 한다. 아마도 이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판단하는 사회 풍조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와 같은 사회 풍조를 의식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져 점차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감시당하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 이는 <서치>가 지적하는 첫 번째 SNS 문화의 문제다.

<서치>의 실질적인 이야기 2: 거짓된 의사소통이 증가하는 SNS 문화의 문제 지적

<서치>가 지적하는 두 번째 문제는 거짓된 혹은 보여주기 식의 의사소통이 만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데이빗은 마고의 페이스북 계정과 아내가 저장해놓은 마고의 친구 연락처를 통해 마고의 행방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친구들은 마고와 친하지 않다는 사실을 데이빗에게 고백한다. 그들에게 마고는 현실 세계를 배회하는 유령인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고가 실종되었다는 뉴스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되자 마고와 친하지 않다는 친구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누군가는 유튜브를 통해 거짓 눈물을 흘리는 영상을 직접 찍어 업로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자주 이용하는 SNS 플랫폼의 타임라인에 장문의 글을 남긴다. 이들이 영상을 찍거나 글을 남기는 것은 굉장히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기회로 삼는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현상도 SNS이 발달하면서 일어났고, 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더 나아가, 오프라인에서는 자기 목소리를 낼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서는 발언이나 댓글을 남긴다. 극 중에서는 계속 범인이 드러나지 않자 아무런 근거 없이 아버지가 범인이니까 조사하라는 댓글이 그 예다.

위에서 말했듯이 <서치>를 볼 때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스크린 라이프'라는 신선한 영화 문법으로 현대 문명의 맹점을 예리하면서도 공포를 느낄 정도로 지적하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서치>는 드라마의 탈을 쓴 서스펜스 장르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