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쌍곡선이 일깨운 여름에게, <레토>

2019. 8. 28. 18:00주목할 만한 시선

제7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레토> (2018)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새로운 작품으로, 고르바초프가 당 서기장으로 임명된 1985년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81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영화의 배경이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전작 <스튜던트> (2016)로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비판까지 확장한 적이 있는데, 이번 영화 <레토>에서는 국민의 자유와 다양한 색깔을 억누르는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정열적인 정신에 집중하고,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관객은 영화 제목에 주목해야 하는 혹은 주목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여전히 많은 러시아 청년들 사이에서 불러지고 기억되고 있는 '빅토르 최'의 등장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쌓아 올리지만, 주인공은 그가 아닌 음악을 매개로 여전히 흐르고 있는 저항 정신이다. 정점으로부터의 거리가 일정한 점들의 집합으로 만들어진 쌍곡선처럼 '마이크'와 '빅토르 최'는 서로 다른 음악 성향을 갖고 있지만, 마이크는 빅토르 최에게 멘토로서, 빅토르 최는 마이크에게 음악적 동지로서 관계를 형성한다. 쌍곡선과 같은 두 사람의 관계 및 주변 상황을 풀어내는 장면 구성과 작법을 이해하고 따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관객 역시 이 영화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1981년 레닌그라드

만약 <레토>의 주인공이 빅토르 최였다면, 영화는 빅토르 최가 무명이었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 '뻐꾸기(Кукушка)', '자아성찰(Следи за собой)', '담배 한 갑(Пачка Сигарет)' 등 그의 대표곡이 발표되었던 시기까지 다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여름이 끝났다(Кончится лето)'를 부르는 그의 무대로 끝이 난다. 즉, 영화는 빅토르 최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전 시기만을 다룬다. 이는 도입부에서 언급한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당시 러시아는 보수적인 기성세대와 정치 사회적 욕망을 표출하는 젊은 세대의 대립이 점차 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초반 러시아 록 음악계를 대표하는 그룹 '주파크'의 보컬이자 리더였던 '마이크 나우멘코'를 중심으로 'T-렉스', '이기 팝', '섹스 피스톨즈', '토킹 헤즈', '루 리드' 등의 서양 음악들이 서서히 유입되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극 중에서 빅토르 최가 그룹 '키노'를 결성하기 이전 그룹 '가린과 쌍곡선'과 함께 활동한 '올렉 발린스키'가 갑자기 징집되어 떠났듯이, 당시 러시아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청년들의 희생을 강요했으므로, 젊은 세대의 저항 정신을 들끓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 러시아의 록밴드는 청소년에게 인류애를 가르쳐야 하는 국가가 요구하는 사회적인 역할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공연장에서는 록 음악이 흘러도 절대로 머리를 흔들며 리듬을 타면 안 되었으며, 조금이라도 동작이 커지면 KGB 요원에 의해 제지를 당하곤 했다. 노래 가사 역시 무대에 오르기 전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으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할 수 없었다. 마이크 나우멘코와 빅토르 최 모두 서양 음악을 소개했지만, 마이크는 주로 유명한 서구 음악을 러시아어로 번안해 불렀기에 엄청난 음악적인 성취를 거두지는 못했다. 주로 마이크와 달리,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던 음유시인 빅토르는 '알루미늄' 오이'나 '8학년 소녀'처럼 개성적이고 풍자적인 가사를 썼으며 서구 밴드를 흉내 내며 자신의 노래를 연주하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이와 같은 빅토르의 등장은 이와 같은 정신이자 마음속 여름이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 그 자체였다. 특히 엔딩 장면에서 그가 부르는 '나무'에서 불합리를 강요하는 국가는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나무'에 빗대는 가사처럼 그의 노래는 많은 청년의 마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는 1985년에 고르바초프가 당 서기장으로 임명되면서 펼쳐진 개방 및 개혁 정책과 국외적인 정세로 인해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특정 인물을 대하는 영화 <레토>의 이질적인 작법

물론 이 영화를 한 인물의 성장영화로 볼 수 있다. 이와 관점에서는 <레토>의 주인공은 빅토르 최다. 그러나, 계속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여름의 아이들이 음악으로 이야기하고 일깨우는 저항정신과 흑백의 사회를 뚫고 발산하는 정열적인 자세를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이를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빅토르 최를 대하는 영화적인 작법을 고수함으로써 뒷받침한다. 극 중에서 빅토르 최(유태오)가 주파크의 첫 번째 무대 장면 이후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해변가에서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센바움)와 동료들과 함께 '여름(Лето)'을 부르며 여유를 만끽하는 마이크(로만 빌릭)를 만나기 전까지 카메라는 빅토르 최의 아이룸(eye room)을 거의 확보하지 않는 채 뒤통수만 보여주면서 그를 뒤따라간다. 그리고, '가린과 쌍곡선'이라는 그룹명으로 록 클럽 무대에 데뷔하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노래를 부르는 빅토르 최를 아이레벨 숏(eye-level shot)으로 보여주지 않고, 대신 로우 앵글(low angle)로 비춰줌으로써 그의 얼굴을 관객에게 온전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더 나아가, 빅토르 최가 주인공이었다면 그를 위한 단독 클로즈업 숏(close-up shot)이 주요하게 사용되었을 테지만, <레토>는 그를 롱 숏(long shot)으로 보여주거나, 혹은 나타샤의 회고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시선을 중심으로 그와 그의 주변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또한 극 중에서 등장하는 촬영기사와 내레이터도 마찬가지로 <레토>만의 이질적인 작법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촬영기사는 마이크와 빅토르 그리고 주변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이들의 여름을 기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만 이들의 1981년을 기록하는 카메라가 극 중에 드러나면서 스크린 안(on-screen)과 스크린 밖(off-screen)에 카메라가 이중적으로 배치되는데, 이는 감독 본인이라고 볼 수 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자아가 촬영기사 캐릭터로 투영되어 감독은 간접적으로 스크린 안에 참여하고, 이들을 가까이 보면서 이들의 여름을 담아내는 상상이지만 영화적 목표에 알맞은 역할을 해낸다. 물론, 이중적인 카메라 배치는 관객 역시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이는 현실과 시공간을 분리하는 가정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내레이터는 촬영기사와 달리 상대적으로 많은 역할을 해낸다. 직접 극 중 인물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뮤지컬 장면 이후 음악을 소개하기도 하고, 심지어 마이크의 무의식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특히 내레이터의 세 번째 역할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이크는 록 음악을 하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그나마 편안한 삶을 누리는 생활과 창작성이 부족한 음악으로 환호를 받는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에 비웃는다. 그런 내면을 형상화했을 때 관객은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빅토르를 향한 그의 질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흑백으로 묘사된 장면과 컬러로 묘사된 장면의 충돌

당시 러시아의 이데올로기적 폭력과 억압을 묘사하는 방법은 한정적이지 않지만, <레토>는 공연을 보는 관객들의 절제된 셔레이드를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할뿐더러, 다양한 색깔과 자유를 박탈한 시대적 배경을 흑백 화면으로 처리함으로써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중간중간 컬러로 묘사된 장면 혹은 스크래치 애니메이션이 포함된 뮤지컬 장면이 삽입되는데, 두 종류의 장면은 흑백 장면과 충돌하면서 잠깐이라도 흑백에 갇힌 인물들의 저항 의식과 자유를 폭발하도록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이후 다시 시작되는 흑백 장면과 하나의 시퀀스를 형성함으로써 흑백 장면이 다시 진행되었음에도 이들의 정열적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효과를 일으킨다. 각별히 눈에 띄는 장면은 해변가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광란의 몸짓을 펼치는 이들의 모습이다. 모닥불은 밤이 되니까 추워서 피운 것일 수도 있지만, 저항 의식을 표출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모닥불에 던져지는 쓰레기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당시 국가 체제를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한 불에 태워져 사라지는 쓰레기, 나체에서 느껴지는 행동 그리고 음악 선율을 따라 울리는 목소리는 몽타주를 형성함으로써 흑백 장면이지만 이들의 정신을 그려내고 경의를 드러낸다.

따라서, <레토>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현재가 과거에 보내는 헌사에 가까운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질적인 영화 작법과 화면 충돌을 포함한 다양한 시도가 억압적인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은 뜨거움을 존경하는 마음 자체라는 주장에 납득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적인 느낌으로 전해지는 <레토>의 사운드트랙을 즐기는 맛 또한 느낄 수 있기에 <레토>는 뼈 속까지 베이스가 울리게 만드는 영화로 기억될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