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인 자세와 모독적인 처벌로 기구하는 해방 <달링>

2019. 8. 17. 02:41주목할 만한 시선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레드 섹션에 초청받았던 폴리애너 맥킨토시 감독의 영화 <달링> (2019)은 사회로부터 도망친 여성과 기독교가 내세운 권위에 의해 통제를 당하는 소녀의 삶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달링은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일방적으로 남성과 성직자의 입에서만 내뱉게 함으로써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기독교 단체 내 가스라이팅 관련 문제를 상기시킨다. 또한, 남성만 보면 대단히 공격적으로 변하는 야생인간과 야생아를 핵심 캐릭터로 삼고,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기독교의 교육방식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종교 범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미성년자와 여성에 가해지는 불합리성을 직접적으로 그려낸다.

비단 남성만 보면 지나치게 경계하는 태세뿐만 아니라 달링이 우연히 한 소년으로부터 설렘을 느끼자 그녀의 엄마가 소년을 바로 죽이는 행위는 과거 사회에서 남성에 의한 트라우마를 체현한 것이다. 기독교 내 성폭력 문제는 달링이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인근 기독교 고아원에 들어간 이후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비록 한 수녀의 도움 덕분에 달링은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고 신앙심을 배우며 질서라는 개념을 인지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질서는 성직자가 고아원에 있는 소녀들을 정신적으로 통제하는 걸 넘어서서 육체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성직자의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후반부에 달링을 방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가스라이팅이 이뤄지는 과정을 숨김없이 묘사한다. 이뿐만 아니라, 정액을 하얀 피라고 부르는 등 기독교 내 성폭행이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되는지 공개한다. 게다가, 낙태권을 포함한 제대로 된 성교육 대신 성서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기독교의 교육 방식을 지적한다.

강렬히 문제 제기를 위해 고수했던 직설적인 자세는 억압당하고 성적으로 착취당했던 소녀들을 해방하기 위한 신성모독적인 처벌로 발전한다. ‘달링의 내면을 지배하던 악마를 치료했다는 기적을 보여주고 기부금을 얻기 위해 성직자가 연 종교 행사에서 달링은 자기도 모르게 억누르고 있었던 부당함에 관한 분노를 표출한다.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달링의 분노는 교회 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끝으로 달링이 직접 가스라이팅과 성폭행을 일삼은 성직자를 처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선, ‘달링은 세례 예식을 할 때 이용하는 성직자의 오른손을 뜯어버림으로써 신성을 논하는 성직자의 민낯을 들추어낸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 고통을 호소하는 성직자에 창을 꽂음으로써 달링은 본인을 포함한 성폭행을 당한 고아원 소녀들을 대표해 성직자가 자신들이 느낀 수치심과 아픔을 짧고 굵게 몸소 겪도록 만든다

젠더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에 의해 억눌리고 사회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는 여성의 현실이나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행 문제를 다루는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달링>은 지극히 직설적이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고초를 관객 또한 체험해보라는 <달링>의 안내이자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기고 싶은 폴리애너 맥킨토시 감독의 마음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