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는 욕망과 삶의 결말, <더 룸>

2019. 8. 13. 13:52주목할 만한 시선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 <더 룸> (2019)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걸 말하면 바로 얻을 수 있는 방을 소재로 삼는다. 기이한 방이 소개된 이후부터 결핍, 욕망, 가치, 책임, 딜레마 등 인간이라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화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더 룸>은 모든 걸 생기게 해주는 방 덕분에 물질에 대한 욕구를 서서히 충족하는 매트(케빈 얀센스)’케이트(올가 쿠릴렌코)’가 물질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기 전과 후로 나뉘는데, 대부분은 공허함을 느낀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에 초점을 두면서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 발생하는 윤리적인 딜레마를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룸>의 골자는 인간의 욕망이며,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 인간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이야기하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다.

주인공 매트케이트의 직업은 각각 화가와 번역가로 수입이 변변찮지만, 서로의 목표를 응원하고 함께 이뤄나가기 위해 외딴집을 사서 이사한다. 이사한 집에는 의문스러운 방 하나가 있었으며 우연한 계기로 그 방은 그들에게 더 이상 미지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소원을 빌면 잠깐의 암전 후 물건이 생산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두 사람은 크지 않지만 소중한 목표를 포기하고 돈, , 화려한 의상 등으로만 가득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미디엄 숏으로 케이트의 텅 빈 얼굴과 담배 연기를 포착함으로써 욕구 해소는 일시적이었을 뿐 공허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나타낸다. ‘케이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매트는 깜짝 선물로 아기방을 준비해 포기했던 자녀 계획을 다시 세우자고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케이트의 아픔을 자극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욕망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욕망은 이전 물질적인 욕망과 다른 특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물질적인 욕심보다 더욱 극심하게 인간이라는 존재를 난도질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수준이다. 욕망은 물질적인 가치와 인간적인 가치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거나 실현 가능한 영역과 실현될 수 없는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욕망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든 일상생활에서 양립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인간적인 가치를 물질적인 가치로 치환할 수 있다는 사고 또는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을 실현하려고 할 때 발생한다. 유산 경험이 있는 케이트는 상기된 아픔 때문에 다시 고통스러워하다가 방을 쳐다본다. 그전까지는 물질적인 것만 간청했기에 생명이 태어나게 해달라는 바람이 이뤄질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케이트1%의 가능성에 도전해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을 충족하게 된다.

아이를 잉태해 낳는 일이 기계처럼 생산 가능한 일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리고 실현돼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 이뤄졌을 때 인간은 만족은커녕 불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탄생이 생물학적 과정을 거쳐 이뤄지지 않고 이룰 수 있다면 죽음 또한 소원 하나로 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볼크만 감독은 이와 같은 불안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매개로 표현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본능적 충동, 대상 관계, 공포, 동일시 등을 집합적으로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일반적인 경우 남근기에 일어났다가 해소된다. 물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에 집착하게 된다. 영화는 이와 같은 특징을 불가사의한 방이 만들어낸 아이에게 심는다.

극 중에서 아이는 빠른 속도로 성인이 되는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성장했으므로 언젠가 매트로부터 보복을 당할 것을 예견하면서도 케이트를 차지하기 위해 친부 살인을 서서히 계획한다. ‘매트역시 본능적으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언젠가 아이의 손으로 살해당할 수 있음을 미리 짐작한다. 크리스티안 볼크만 감독은 새로운 단계의 욕망으로 인한 불안을 묘사하기 위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장센으로도 체현한다. 지하실에 엄청나게 꼬인 채로 설치된 수많은 전선은 풀어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끝이 없는 미지의 공포를 상징한다. 더 나아가, 충족해서는 안 될 욕망이 실현됐을 때 두려움과 불안의 굴레는 집 내부의 경우 뫼비우스의 계단으로, 외부의 경우 벗어나기 힘든 자연 미로로 실체화되었다.

<더 룸>은 비관론적인 시선을 기반으로 실현돼서는 안 될 욕망이 이뤄졌을 때 맞이하는 결말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하나는 초반부에, 나머지 하나는 후반부에 세워진다. 초반부에 전기공이 매트케이트에게 말했듯이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1975년에 일어난 살인 사건처럼 누군가는 피를 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혹은 엔딩 시퀀스에 클로즈업 숏으로 담아낸 두 사람의 표정처럼 행복이라는 감정을 잃은 채 영원히 살아가는 결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더 룸>은 적정한 수준의 욕망은 삶을 영위하는 동기가 될 수 있지만, 선을 넘는 순간 되돌이키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파괴할 수밖에 없음을 독특한 소재로 보여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