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의 변주를 위한 반전 <부탁 하나만 들어줘>

2019. 8. 4. 00:28주목할 만한 시선

<히트> (2013), <스파이> (2015)와 <고스트버스터즈> (2016)를 연출한 폴 페이그 감독은 연출뿐만 아니라 본인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를 통해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전달했을뿐더러, 돋보이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로 유명하다. 폴 페이그 감독은 이번에 작가 다시 벨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각색해 <부탁 하나만 들어줘> (A Simple Favor, 2018)라는 영화로 돌아왔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자기 아들과 같은 반 아이의 엄마 '스테파니(안나 켄드릭)'에게 한 부탁이 알고 보니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전이 밝혀지는 미스터리 및 스릴러 영화다. 극 중에 수많은 반전들이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데,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반전보다 반전으로 인해 '간단한 부탁'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더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어떤 한 부탁이 반전과 연결되면서 변동을 보이는 두 사람의 운명 곡선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나랑 가까워져서 좋을 게 없을걸"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스테파니는 힘들지만, 그리고 다른 학부형들이 비아냥거려도 이에 굴하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어느 날 그녀는 아들 하굣길에 에밀리를 만났고, 어쩌다 보니 에밀리의 집에서 마티니 한 잔을 같이 한다. 이날을 계기로 두 사람은 점점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나중에는 각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공유한다. 이제는 비밀까지 공유했기에 두 사람은 점차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룻날 스테파니는 에밀리로부터 긴급 전화를 받게 되는데, 에밀리는 급한 일이 생겨 아들을 대신 픽업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스테파니에게는 간단한 부탁이어서 그녀는 이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며칠이 지났는데도 에밀리가 나타나지 않자 스테파니는 이 상황이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에밀리의 남편 '숀(헨리 골딩)'에게 연락을 한다. 두 사람은 갑자기 사라진 에밀리를 걱정하며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만 결국 시체가 발견되었고, 스테파니는 아내와 사별하게 된 숀의 곁을 지킨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L' Origine du monde)'와 닮아 있는 부탁의 변주, 그리고 스테파니의 성장

그런데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빈자리를 채운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욕망을 해방시키면서 숀의 곁에 있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세련되고 감각적인 집의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특히 그녀의 해방된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셔레이드는 당연히 숀과의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는 장면도 있지만, 에밀리의 옷을 입고 거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무의식과 조우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어느 날, 에밀리의 아들은 식사자리에서 자기 엄마를 봤다고 말한다. 스테파니는 이미 시체를 봤기 때문에 당연히 에밀리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식사자리에서 들은 말 한마디로 인해 그녀는 자신이 받았던 부탁이 결코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다. 이와 동시에, 이 간단한 부탁은 진실게임으로 전환된다.

간단한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스테파니는 얼마 전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옮겨놓은 에밀리의 나체 초상화를 다시 꺼내 들추기 시작한다. 근데, 에밀리의 나체 초상화는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였던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세상의 기원(L' Origine du monde)'을 연상하게 만들고, 이는 부탁에서 변주된 진실게임이 다시 한번 변주의 과정을 거쳐 에밀리의 성장으로 발전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사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은 알랭 기로디 감독의 <스테잉 버티컬> (2016)과도 관련이 있는 작품이다. <스테잉 버티컬>에서 이 작품은 '리오(다미엔 보나드)'와 '마리(인디아 헤어)'의 섹스 장면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마리의 모습으로 재현되는데, 그다음 장면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그녀의 모습이 나온다.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자 여성의 성기를 곧 세상의 기원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지게 된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L' Origine du monde)'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 '세상의 기원'을 떠올리게 만드는 에밀리의 나체 초상화는 새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지는 않지만, 스테파니의 새로운 시작 및 성장을 나타낸다. 초상화에 적힌 의문의 이름을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경찰이 보여주지 못한 추리 실력을 보여줬을뿐더러, 더 나아가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서 갑자기 벌어진 진실게임의 희생양이 아닌 주도권을 쥐는 위치로 올라서게 된다. 어쩌면 거듭되는 반전을 통해 스테파니가 판을 쥐는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부에서 두 사람은 마티니를 마시며 비밀을 공유한다. 스테파니는 남편과 오빠의 사망과 얽힌 비밀을, 에밀리는 얼마 전에 있었던 개인적인 일을 공유한다. 그러나, 스테파니가 자신의 비밀을 꺼내게 되는 과정은 에밀리의 거친 말투로 인해 다소 강압적이었고, 게다가 에밀리가 스테파니에게 털어놓은 비밀은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다. 즉,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신뢰관계를 형성한 것처럼 보였지만, 끊임없는 반전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는 거짓된 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만약, 두 사람의 관계가 모든 측면에서 동일하고 결점 없이 신뢰로만 가득 찼다면, 스테파니는 에밀리가 사라지자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거나 에밀리의 행방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심하고 추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거짓말은 스테파니의 성장을 자극하는 동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반전은 모두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거침없이 여러 반전을 내놓음으로써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게다가, 긴장감이 고조되는 순간에도 폴 페이그 감독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유머 코드를 삽입함으로써 영화를 감상하는 맛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다양한 이유로 이 영화를 기대하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