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극복할 수 있는 심연인가? <영원한 족쇄>

2019. 8. 8. 19:44주목할 만한 시선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블루 섹션에 초청받은 아론 스킴버그 감독의 영화 <영원한 족쇄> (2018)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작품이다. 현실과 상상의 영역을 오가는 형식을 취하는 영화는 내러티브를 따라다니는데 쉽지 않지만, 이와 같은 형식을 채택하는 영화가 점차 더 많이 제작되면서 이제는 드물지 않다. 근데, 여전히 대부분 관객은 이런 영화를 접하면 그 순간부터 어느 부분이 현실이고 비현실인지 구분하려고 한다. 그러나 비간 감독의 영화 <지구 최후의 밤> (2018)처럼 그저 형식만 이용했을 뿐인데 어느 부분이 현실의 영역을 논하고 상상의 영역을 다루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인지적 혼란에 빠지는 작품이 존재한다. <영원한 족쇄>는 이에 해당한다. <영원한 족쇄>는 겉으로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형식을 선택했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관객에게 특정 숏이나 시퀀스를 제공한 뒤 무언가를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위함과 연관이 있다.

아론 스킴버그 감독의 <영원한 족쇄>는 해리 프레이저 감독이 1952년에 제작한 영화 제목과 동일하며, 이 사실은 아론 스킴버그 감독의 연출 목표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해리 프레이저 감독의 <영원한 족쇄> (1952)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가 있는 샴쌍둥이 자매를 법정에 세우는데, 만약 둘 중 한 명은 범행과 무관하다면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를 비장애인 관점에서 결정하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영화 제목을 그대로 빌려오면서 샴쌍둥이를 포함해 신체적 장애가 있는 다양한 캐릭터를 극 중에 배치한다. 다만,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본인의 연출 의도를 살려 자유연상기법과 비슷한 형식을 활용해 해리 프레이저 감독의 동명 영화를 약간 변주한다.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해리 프레이저 감독의 영화가 던진 질문 대신에 과거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 영화 업계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실제로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는지를 물어본다. 또한, 질문에 관해 고민하는 주체의 경우 해리 프레이저 감독은 극 중 비장애인으로 설정한 반면,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화면 밖에 있는 관객을 택했다.

영화는 배우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는 트랙 인 시점 숏으로 시작한다. 대부분 관객은 로젠탈을 포함한 신체적 장애를 가진 배우가 등장해 촬영 장소인 병원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볼 테다. 하지만,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영화 첫 장면부터 관객을 토론장으로 초대한다. 트랙 인으로 들어오는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 불명확한 상황에서 화장하며 겉모습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배우 마벨을 비춤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추후 배우와 제작진들이 장애인 배우를 맞이하는 태도가 빈곤 및 감정 포르노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오프닝 시퀀스 이후 수많은 숏들이 나오는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숏과 숏 사이에서 외쳐지는 !’이라는 소리다.

화면 밖에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비장애인 배우와 장애인 배우가 번갈아가면서 각 숏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독립적인 두 이야기를 꾸준히 만든다. 독립적인 두 이야기는 하나씩 하나씩 차례를 바꾸면서 촘촘한 겹을 이루며 상호 작용을 일으킨다. 이 상호작용은 크게 두 가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진다. 첫 번째는 작업을 위해 형식적으로 비장애인 배우와 장애인 배우 간의 대화를 시키는 제작진의 자세는 제작진의 도덕의식이 결여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과연 이런 태도에 저항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배우에게는 잘못이 없는지 묻는다. 두 번째는 어딘가로 수렴하지 않고 발산하는 상호작용을 보여줌으로써 시간이 흘러도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을 괴물로 취급하며 영화 <미녀와 야수>처럼 괴물과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여성을 소재로 한 편협적인 영화와 작별할 수 있겠냐고 질의한다.

아론 스킴버그 감독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본인이 영화를 만든 목적을 잊지 않는다. 엔딩 시퀀스는 오프닝 시퀀스와 반대로 트랙 아웃으로 카메라가 빠져나오면서 담아낸 빈 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빈 공간과 관객 사이의 간격은 극복해야 할 심연을 상징한다. 만약 반복해서 제시된 물음에 응답하지 않고 장애인을 향한 잘못된 시선과 태도를 고치기 위한 담론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영화 업계 내의 윤리적인 논란을 해결하는 게 더욱 힘들어질지 모를 뿐만 아니라, 장애인은 정말로 사회에서 영원히 고립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한 족쇄라는 제목은 유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