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함께 이겨내는 서로의 존재 <해피 어게인>

2019. 9. 16. 09:00어쩌다가 쓴 리뷰

살면서 누구나 아픔을 겪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아픔이 불러일으키는 극심한 고통이 두려워 이 사실을 계속 부정하려고 한다. 특히, 삶의 희망이자 기쁨이었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써 생긴 아픔과 슬픔은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다. <해피 어게인>은 이런 아픔은 없는 척도 못 하고 거부할 수도 없다고 하지만 이를 직면하고 극복해 나갈 방법을 찾아 나서는 영화다. 물론, 누군가는 <해피 어게인>이 엣나인필름에서 배급한 영화치곤 평범해서 그리고 전형적인 미국 가족 영화라는 점에서 크게 끌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빌(J.K. 시몬스)과 웨스(조쉬 위긴스)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유심히 지켜본다면 결코 평범한 힐링 영화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파도 괜찮은 척, 슬퍼도 담담한 척... 고통을 혼자 견디거나 부정하려는 사람들

극 중 인물들은 숨이 턱 막히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각기 다른 행동을 보이지만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옭아맨다. 빌은 자신의 삶 그 자체였던 아내 지니(킴벌리 크랜달)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의 무게에 눌린 나머지 숨을 쉬는 일마저도 고통스러워하며 아들 웨스와 함께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간다. 빌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 출발 하려고 노력하기 위해 교장이자 친구의 조언으로 심리 치료를 받으며 아파도 괜찮은 척 그리고 덤덤한 척을 한다. 웨스도 아빠처럼 엄마의 죽음으로 힘들어한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힘들어하는 아빠를 매일 바라보는 웨스는 전학 간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며 밝은 척을 하지만 어두운 공간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조용히 삼킨다. 

이러한 빌과 웨스 앞에 카린(줄리 델피)과 레이시(오데야 러쉬)가 등장한다. 이들도 빌과 웨스처럼 외로이 고통을 견디거나 부정하려는 인물들이다. 카린은 학생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선생님이자 빌의 옆자리를 지켜주는 존재이지만 본인도 불임으로 인한 이혼과 과거의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레이시는 수많은 남학생 사이에서 인기 많은 여학생이지만, 자신의 고민과 아픔을 누군가에게 쉽사리 드러내지 못하고 계속 방황한다. 현대 사회는 고통을 묵묵히 버텨내고 이겨내는 게 미덕이며 고통을 이러한 방식으로 이겨냈을 때 그에 대한 결과물로 행복이 뒤따라 온다는 잘못된 믿음을 논한다.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신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지만, 인간에게는 감성이라는 또 다른 특성이 있으므로 현대 사회가 논하고 있는 믿음이 잘못되었음에도 우리도 모르게 이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빌, 웨스, 카린, 레이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일은 두려움으로 번지고

우리는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누군가 내 곁을 지켜주면 기쁨을 두 배 이상 느끼기도 하지만 내 옆을 지키는 존재가 고통을 겪는 순간에 서 있어주기만 해도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빌과 레이시는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 보인다. 빌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가슴속에 새기더라도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깊은 슬픔의 수렁에 빠지고, 레이시는 누군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와도 스스로 고통의 굴레를 쓰고 있으니 자신 옆의 존재를 두려움 그 자체로 치환해버린다. 그런데, 빌과 레이시의 곁을 지켜주고 싶은 카린과 웨스는 그들의 안타까운 태도를 이해하지만 두려움이 그들의 심리 상태를 지배하면서 마찬가지로 심적으로 힘들어한다. 

조수석이 말한다, '그래도 우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기에 새로운 내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영화를 보면서 계속 조수석이 눈에 밟혔다. 조수석이 눈에 계속 밟히는 이유에 관한 대답을 첫 번째 관람을 했을 때도, 두 번째 관람을 했을 때도 우느라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세 번째 관람 때 한 번 대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조수석이 3인칭 시점 중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네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 빌과 웨스가 이사할 때 조수석에는 시트가 아예 없었고 이삿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시트가 다시 생기고 그 자리에 더 이상 사물이 아닌 사람이 앉기 시작했다. 서서히 사람이 앉기 시작하고 네 사람이 모두 탑승해서 바닷가를 달릴 때 조수석은 비로소 입을 떼며 우리에게 '괜찮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면서 고통을 함께 이겨낼 서로의 존재가 있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이 새로운 내일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수석은 이 영화가 결국 관객에게 층위적으로 다가오는 힐링과 행복이라는 사실을 전달해준다. 조수석이 현실적으로 직접 말할 수 없는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의인화를 통해 짧지만 울림 있는 격려를 건네는 따뜻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거꾸로 설치된 조수석 자리는 때로는 다른 이에게 의지하는 것도 상실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해피 어게인>은 어떤 영화보다 가슴에 뿌리내린 아픔을 매우 진지하게 다룬다. 그러므로 남녀노소 모두 극 중 인물들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뿐더러 이들이 엉망진창이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며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같이 찾아가기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닌 노을빛이 물드는 푸른 바다만 펼쳐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