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가치관과 절망이 퍼지며, <퍼스트 리폼드>

2019. 8. 24. 16:00주목할 만한 시선

제7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은 <퍼스트 리폼드> (2017)는 <택시 드라이버> (1976)의 각본가로 유명한 폴 슈레이더의 연출작이다. <퍼스트 리폼드>는 타락해가는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여러 현대사회의 문제 중 환경오염을 결부시킨 소재를 다룬다. 근데,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단지 소재나 각본 때문이 아니다. 한 사람의 가치관과 절망이 다른 누군가에게 옮기는 과정을 그려내기 위한 영화적 장치가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본인이 가진 신앙심을 시험하며 변화하는 내면을 호소력 짙게 연기한 에단 호크 덕분에 <퍼스트 리폼드>는 전형성과 거리가 먼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우선, <퍼스트 리폼드>는 4:3 화면비율을 고집하며 종교적인 이유와 건강과 관련된 이유로 인해 답답해진 ‘톨러(에단 호크)’의 내면을 대변한다. 특히, 우중충한 하늘 아래 ‘퍼스트 리폼드 교회’를 로우 앵글 숏(low angle shot)으로 담아낸 오프닝 시퀀스는 그의 신앙심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우회적으로 묘사한다. 이와 동시에 암에 걸려 생이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는 그가 12개월 동안 오로지 수기로 일기를 작성하고 나중에 다 태워버리겠다는 계획을 그의 목소리로 전달하며 그가 타인의 절망과 생각에 전염되기 전부터 믿음을 시험할 의지가 있었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4:3 비율의 화면 구도에 주인공을 중앙에 가둬놓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모노드라마의 느낌을 실험적으로 연출하는 방식을 택한다. 

일반적으로 일대일 대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리버스 앵글 숏(reverse angle shot)을 활용한다. 그런데, <퍼스트 리폼드>의 리버스 앵글 숏은 톨러가 상대방과 대화할 때, 특히 기독교 신자 ‘메리(아만다 사이프리드)’와 그녀의 남편 ‘마이클(필립 에팅거)’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앞의 화면 길이와 반대 시각의 장면 길이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메리와 마이클이 등장하는 장면보다 톨러가 등장하는 장면을 더 길게 보여줌으로써 그의 심적 상태와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게다가, 장면을 구성하는 피사체와 카메라 움직임의 분리, 그리고 피사체와 목소리의 분리는 이 영화가 전형성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보통 영화는 한 사람의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주인공과 카메라의 시선이 일치하는 듯한 클로즈업 숏(close up shot)을 이용한다. 근데, 이 영화는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도 달라지는 심적 상태를 그려내기 위해 카메라가 피사체를 따라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화면 중앙에서 왼쪽에 치우쳐져 서 있는 톨러가 사색할 때 카메라는 그를 따라가기는커녕 초점을 중앙에 두며 익스트림 롱 숏(extreme long shot)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피사체와 목소리가 분리되는 경우 일반적인 독백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만약, <퍼스트 리폼드>가 일반적인 독백 장면을 모방했다면, 표정에 고백하는 톤을 대입하며 심경 변화를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톨러의 1인칭 시점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입이 움직이지 않는 그의 정지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를 분리함으로써 주인공의 내적 고민을 우회적이지만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언급된 방식 이외에 <퍼스트 리폼드>는 사건의 진행 혹은 심경을 묘사하기 위해 비언어적인 기술을 사용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린 램지 감독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 (2017)와 같이 크고 작은 이미지들로 서술한다. 예를 들어, 톨러가 절망에 빠진 급진적 환경주의자 마이클을 만나는 시점을 전후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초침이 움직이는 시계 이미지를 활용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가치관과 절망적인 감정에 완전히 전염되어 공감의 상태에 다다랐음을 술잔 안에 다른 두 액체가 섞이면서 일어난 기포 이미지로 묘사한다. 

<퍼스트 리폼드>가 지적하는 현대사회의 문제들은 다양하다. '제퍼스 목사(세드릭 더 엔터테이너)'가 말했듯이 현대인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전보다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긴 하지만, 포르노물의 범람, 폭력적인 영상과 게임의 수 증가 속에 잘못된 길에 빠져들기 쉬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리고, SNS의 발달 덕분에 활발한 소통을 할 수 있지만, 과거와 달리 누군가와 직접 접촉하며 진행되는 소통이 아니다 보니 고립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수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의견을 표출할 때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굉장히 공격적인 말투로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점차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영화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환경문제다. 이 영화가 환경문제를 소재로 삼은 이유는 후반부에서 톨러가 언급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성경에는 생태적 회개를 포함한 환경보호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인의 역할은 신자들에게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것도 있지만, 환경문제를 포함한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두며 봉사를 해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점차 오늘날 기독교의 자세에 회의를 느끼는 톨러도 처음에는 마이클이 자세한 과학적 통계자료를 내세우며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도 듣기만 했지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심지어, 메리의 부탁으로 시작한 마이클의 상담을 맡았을 때 톨러는 그의 절망적인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톨러는 마이클의 자살을 계기로 교회의 타락상을 목격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포함한 종교인이 성경의 뜻을 실천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규모가 있는 종교 행사를 앞두고 그는 제퍼스 목사와 함께 매번 행사에 도움을 주는 사업가를 만난다. 근데, 만난 자리에서 사업가가 마이클의 장례식 기사를 보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제프리 목사는 사업가에게 허리를 굽히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톨러는 이런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클의 유품인 노트북에서 자신이 만난 사업가와 제프리 목사와의 재정적인 유착관계를 발견한 톨러는 본인의 신앙심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한데, 마이클의 급진적인 가치관과 절망적인 감정이 톨러에게 전이된 계기는 장례식 이후에도 지속된 메리와의 만남이다. 톨러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메리를 위해 그녀가 남편과 했던 취미생활을 공유하며 상담을 해주다가, 어느 날 밤 그녀의 선도하에 명상을 함께 하게 된다. 근데, 이 명상은 톨러에게 평화로웠던 자연환경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과 이로 인한 고통을 체험하는 신비적 경험으로 이어졌다. 비로소, 톨러는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마이클의 태도를 공감하게 되며 그의 가치관과 불운한 감정에 장악되었다. 그리고, 그는 성경에 적힌 예수의 말씀에 따라 환경문제에 신경 쓰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톨러의 결심을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 인물은 제스퍼 목사다. 

제스퍼 목사는 톨러에게 모든 고통을 인내하는 예수와 달리 이상향에만 머무른다고 화낸다. 실은 이는 모순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톨러는 과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현실에 주목하며 성경의 뜻을 실천하려는 반면, 제스퍼 목사는 좋은 시설을 갖춘 교회를 갖기 위해 정치인이나 사업가와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눈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제스퍼 목사가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250주년 기념행사에 엄청 신경 쓰는 이유 또한 교회에 후원하는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행사 당일 톨러는 마이클이 끝내지 못한 임무를 대신 수행하기로 한다. 그는 비록 자신이 지금 당장 하려는 행동은 곧바로 결과로 연결되지 않지만, 기독교 공동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결국에 보존의 행위가 창조의 행위를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덧붙여 그가 거울을 바라보며 예수가 겪은 육체적 고난을 모방해 제퍼스 목사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실천적으로 반박했다는 점에서 그의 의지가 탄탄하게 심신에 탄탄하게 자리 잡혔음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퍼스트 리폼드>가 예상과 달리 톨러의 실천으로 끝나지 않고 격동적인 감정을 그려내며 마무리되므로 다소 황당할 수 있다. 그러나, 폴 슈레이더 감독이 제시한 결말 역시 의미가 있을뿐더러, 어떻게 보면 톨러가 보여주고자 했던 실천적 행동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적 테마 중 하나가 사랑일 뿐만 아니라 극 중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 또한 사랑이라는 테마와 관련 있지만, <퍼스트 리폼드>가 교회의 타락상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에서 진실한 사랑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아마도 폴 슈레이더 감독은 본인이 생각한 결말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인류를 고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