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여기는 사회적 덕목에 반문하며 <사회로부터 탈출해야 할 7가지 이유>

2019. 7. 29. 02:40주목할 만한 시선

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레드 섹션에 초청을 받은 영화 <사회로부터 탈출해야 할 7가지 이유> (2019)는 동명의 연극을 기반으로 에스테브 솔러, 제랄드 퀀토, 그리고 데이비드 토라스 감독이 힘을 합쳐 완성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7가지 가치로 가족, 연대, 질서, 소유, 노동, 진보, 그리고 헌신이 선택되었으며, <사회로부터 탈출해야 할 7가지 이유>는 이와 같은 가치가 당연하지 않다고 가정했을 때 일어나는 상황을 7가지 에피소드로 엮어낸 블랙코미디다.

1. 가족

첫 번째 에피소드는 긍정적으로 간주되는 가족의 가치를 반박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무언가를 고백하려는 부모와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아들이 등장한다. 부모는 피임 대신 질외사정을 해 임신을 피하려고 했지만, 의도하지 않게 아이를 낳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부모는 아들을 향해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악담을 퍼붓다가 결국 자신들의 손으로 아들을 제거해버린다. 따라서, 이 에피소드는 부모의 충격적인 고백과 아들을 정말로 살해하는 경악스러운 실천적 행동을 묘사함으로써 과연 무조건적 사랑을 베푸는 게 당연한 일인지 반문한다.

2. 연대

두 번째 에피소드는 연대의 현실을 묘사한다. 이 에피스드에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노부부와 갑자기 TV에서 기어 나오는 흑인 난민이 등장한다. 노부부는 느닷없이 등장해 사라지지 않는 흑인 소년을 경계한다. 현대사회는 세계화와 더불어 범국가적인 연대감을 강조하지만, 흑인 난민을 경계하며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려는 노부부의 대화를 보여줌으로써 연대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그려낸다.

3. 질서

세 번째 에피소드는 질서나 대개 많은 사람이 옳다고 주장하는 내용에 흠이 있는지 따지지 않고 따르는 현실을 그려낸다. 낯선 방문객은 새벽에 갑자기 한 중년 여성이 사는 집을 방문해 숫자 ‘6’ 다음에 오는 숫자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중년 여성은 처음에 이를 멍청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숫자를 세보니 그다음 숫자가 생각나지 않아 당황해한다. 결국 그 여성은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숫자 ‘6’ 다음에 오는 숫자가 무엇인지 확인하라고 위층으로 올려 보내는데, 남편은 미지의 생물체에 의해 실종되고 만다.

그런데, 중년 여성은 남편이 위층에서 돌아오지 않자 그냥 낯선 방문객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며 세 번째 에피소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이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님포매니악 볼륨1> (2013), <님포매니악 볼륨2> (2013), 그리고 <살인마 잭의 집> (2018)을 통해 정치적 올바름 혹은 다수에 의해 완성된 질서에 대한 무조건적인 따름이 민주주의를 해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은 두 사람은 사회가 규정한 질서가 타당한지 한 번도 의구심을 가지지 않은 현대인을 나타낸다.

4. 소유

네 번째 에피소드는 소유로 인한 부정적인 연쇄 작용을 보여준다. 부동산 중개업자와 집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여성 고객 간의 대화가 진행된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전화를 받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여성 고객은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목을 매 자살한 남성과의 대화를 상상한다. 이 죽은 남성은 여성 고객이 일하는 은행의 회유에 집을 샀다가 거품경제로 인해 재산을 잃으며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었다. 상상 속에서 진행된 대화 때문에 죄의식이 발동된 여성은 집을 산 뒤 곧바로 죽은 남성과 같은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이는 소유라는 개념의 어두운 이면을 나타내는 동시에 금융기관이 부실해지면서 터진 부동산 거품 때문에 경기가 급격히 냉각된 2008년 이후 당시 유럽 상황을 연상케 한다.

5. 노동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노동의 사전적 정의가 갖는 모순을 지적한다. ‘노동은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한 사회 구성원이 육체적 노력 혹은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를 가리킨다. 하지만, 노동의 현실은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과 생산된 물건을 향유하는 사람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의 공간은 세계 유명 브랜드 기업과 동남아시아 노동자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방적인 계약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은 바닥을 뜯고 나와 저항하며 정당한 계약을 요구하지만, 의류 관련 사업을 하는 사장은 이들의 요구를 들은 체 만 체 하며 노동자들을 다시 바닥 아래 가두려고 한다. 무엇보다 사장이 머무르는 공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노동자의 잘린 손가락은 언급한 사전적 정의의 모순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다.

6. 진보

여섯 번째 에피소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우며 사회 전체의 복지를 중요시하는 공리주의 개념과 SNS 중독을 끌고 와 진보의 가치를 논한다.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여성은 무리하게 길을 건너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은 남성을 우선 공장으로 피신시킨다. 남성은 여성에게 구급차를 불러 달라고 빌지만, 여성은 한 사람 때문에 구급차를 부르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다른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을 수 있으므로 강경히 거부한다. 오히려, 여성은 남성이 죽기를 소망한다. 결국 남성이 사망하게 되는데, 여성은 방긋 웃으며 SNS 계정에 남길 셀피를 찍는다. 이를 통해 다수를 위하는 척하며 개인의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이기심을 확인할뿐더러, 사리 분별없이 뭐든지 찍어 올리는 SNS 중독과 인간성 결여를 목격하게 된다.

7. 헌신

마지막 에피소드는 결혼식 소동을 매개로 삼아 긍정적으로만 그려지는 헌신의 가치를 뒤집는다. 혼인서약만 마치면 결혼식이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여성은 결혼을 맹세하겠다는 말 대신 오히려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이 남녀 모두에게 공평한지 질문을 던진다. 여러 섹스 체위 중 하나를 예시로 제시하는 건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시선 교환 없이 여성이 일방적으로 남성에게 맞춰야 하는 체위는 부부 관계를 맺었지만 여성의 수동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가부장제를 상징한다. 따라서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헌신이 어떤 관계에서는 일절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사회로부터 탈출해야 할 7가지 이유>는 에피소드마다 흔히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가치 때문에 희생을 당하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희생된 인물들은 각자 앞에 놓인 문을 열고 사회로부터 탈출하려고 하지만,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이는 이 영화가 선정한 7가지 덕목이 아무런 의심 없이 견고히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거로 해석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