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있게 한 <탠저린>

2019. 7. 28. 01:16주목할 만한 시선

<플로리다 프로젝트> (2017)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주목할 만한 미국 독립영화 감독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션 베이커 감독의 전작 <탠저린>이 제5회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이후 3년 만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했다. <탠저린>은 스마트 폰으로 찍은 최초의 영화는 아니지만 모든 장면들을 iPhone 5s 두 대로 촬영된 것으로 유명한 영화다. 그러나, 그 사실 하나로만으로 기억되기에는 아쉬운 대단한 영화다. 왜냐하면 그동안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LA의 모습을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하위문화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타자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탠저린>은 영화 촬영에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야기의 완성도까지 잡음으로써 놀라운 영화적 성취를 이뤄낸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이 마땅한 영화다. 

LA, 도시 자체가 잘 포장된 거짓말

<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에서 ‘베티(나오미 왓츠)’가 할리우드 스타의 꿈을 안고 공항에 도착했고, <라라랜드> (2016)에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는 각자의 꿈을 펼치기 위해 LA로 왔다. 이 두 영화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LA는 꿈의 도시로 알려져 있거나 그렇게 인식됐다. 하지만, 션 베이커 감독은 웨스트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그동안 영화들이 가리려고 애썼던 LA의 민낯을 강렬한 음악과 함께 그대로 그려낸다. 그리고 도시 자체가 잘 포장된 거짓말임을 보여주기 위해 시간적 배경을 크리스마스이브로 설정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하면 떠오르는 미국 도시는 뉴욕, 보스턴 등 미국 동부이지 LA는 아니다. <탠저린>이 보여주고 있는 LA의 크리스마스이브는 따가운 햇볕, 매춘 호객 행위를 하는 길거리의 모습과 술에 심하게 취해 토하는 승객의 모습,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 대신 끼니를 겨우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가게와 도넛 가게 풍경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환상을 깬 현실적인 LA는 보랏빛 대신 탱탱볼 같은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즈)’와 ‘알렉산드라(마야 테일러)’가 거리를 휘젓고 다닐 때마다 와일드한 탠저린 빛으로 물들여진다. 

‘소수 집단(minority group)’으로 보편적인 이야기하기

<탠저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수 집단에 속한다. 주요 인물은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매춘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신디’와 ‘알렉산드라’ 그리고 아르메니아에서 LA에 이민 온 택시 운전사 ‘라즈믹(카렌 카라굴리안)’이다. 끊임없이 번갈아 보여지는 세 사람의 하루를 보면서 관객들은 트랜스젠더, 노숙자, 약쟁이, 포주 등 사회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들은 절대로 주류 문화에 속할 수 없고 하위문화에 속하면서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자본주의가 팽창하는 사회 안에서 가정 배경, 교육 수준, 인종, 성별 등의 이유로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 하지만, 션 베이커 감독은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 했다. 대신, 그는 ‘소수 집단’을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희화화하지 않을뿐더러 타자화(stereotype) 하지 않았다. 보통, 사회적 약자 혹은 하위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그리는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잠자고 있던 사회적 약자에 관한 강박관념을 일깨운다.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들은 오로지 착한 도덕성을 가진 인물들로 그려내고, 영화의 끝에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라는 의제를 던지곤 한다. 

그러나, 션 베이커 감독은 이러한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공연 홍보를 위해 초대장을 뿌리는 ‘알렉산드라’, 출소한 지 24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와 바람피운 여자를 찾으러 다니는 ‘신디’, 아르메니아 이민자 출신으로 택시를 몰면서 트랜스젠더와 성매매를 하는 ‘라즈믹’의 삶을 평행 선상에서 다룬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문화에서 왔지만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결국 하나로 묶이게 된다. 세 사람은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사회적 약자의 모습과 달리 거칠 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들이다. 션 베이커 감독이 꾸밈없이 그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은 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정과 배신의 감정을 체험하고, 감독의 의도대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편견을 갖지 않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친구의 바람’은 맥거핀(macguffin)

‘신디’가 길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영화 자체가 역동적이게 된 계기는 포주이자 자신의 남자친구 ‘체스터(제임스 랜슨)’가 자신이 남자친구 대신 마약 소지 혐의로 28일 동안 감옥에 수감된 동안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다. ‘신디’가 LA 거리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남자친구와 바람을 피운 ‘다이나(미키 오하간)’를 찾아 끌고 다니면서 체스터가 있는 ‘도넛 타임’ 가게로 향한다. 그러나 신디를 하루 내내 떠돌게 한 체스터의 바람은 맥거핀에 가깝다. 왜냐하면 바람둥이 소탕 작전의 결말에는 ‘나 사랑해? 안 사랑해?’ 혹은 ‘그러니까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인정할 거야? 안 할 거야?’와 같은 질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신디’를 계속 떠돌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건대, 션 베이커 감독은 <탠저린>을 로드 무비로 빙자해서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버디 무비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신디’는 ‘다이나’를 찾은 뒤 버스를 타고 ‘도넛 타임’으로 향하던 중 자신의 절친 ‘알렉산드라’의 공연이 메리네 가게 7시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리고 방향을 갑작스럽게 틀어버린다. ‘알렉산드라’의 공연에 오겠다고 말한 사람 중에 유일하게 공연에 참석한 ‘신디’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친구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이브 무대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은 친구의 화장을 친구의 화장을 고쳐주고 ‘알렉산드라’의 ‘Toyland’ 공연이 끝나자마자 열렬히 환호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이 없는 두 사람에게는 ‘친구’라는 존재이자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있음을 세탁소 안에서 찍은 2인 구도 장면(two shot)에서 깨닫게 된다. ‘신디’는 단 한 번이었지만 자신의 남자친구와 육체적 관계를 나눈 사실을 말하지 않은 ‘알렉산드라’에게 엄청난 배신을 느끼고 혼자 길을 걷다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오줌 테러를 당한다. 그 상황을 목격한 ‘알렉산드라’는 친구의 분노를 묵묵히 들어주면서 재빨리 수습하기 위해 세탁소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알렉산드라’는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흐르는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다. 금발 가발이 오줌 범벅이 되어 쓰지 못하는 ‘신디’를 위해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가발을 건네준다. 애틋하게 서로의 손을 어루만져 주고 시선을 교환하는 두 사람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친구 관계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으면서도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의 도시 ‘La La Land’보다 가장 아름다운 친구 관계를 깨닫게 해주는 ‘Launderland’와 같은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게 된다. 

<탠저린>은 소수 집단을 타자화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션 베이커 감독의 의중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동시에 LA의 하늘 색깔이 다채롭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멋진 영화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