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인 빛과 어둠에 대하여 <본 투 비 블루>

2019. 7. 27. 23:25주목할 만한 시선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본 투 비 블루> (2015)는 재즈 역사에서 전설적인 인물 쳇 베이커를 다룬다. 1950년대와 1960년대라는 특정 기간 일어나는 쳇 베이커의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전기 영화라고 볼 수 있지만 음악 영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 (2007)가 전설적 포크록 가수 밥 딜런의 삶보다 그의 정체성과 음악적 영혼을 다뤘듯이, 로버트 뷔드로 감독도 쳇 베이커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재구성함으로써 그의 혼이 담긴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그런 전형적인 음악 전기 영화로부터의 탈피는 쳇 베이커의 재즈 음악이 주는 풍요로운 감정들을 부각했다. 

쳇 베이커의 오랜 팬 에단 호크, 그의 영혼을 되살리다

에단 호크는 물론 연기를 잘하는 영화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음악적 감성이 풍부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그는 쳇 베이커의 오래된 팬이었고 이 영화를 찍기 전 그의 삶을 영화화하기 위해 시도한 경험도 있다. 약 20년 전, 에단 호크는 <보이 후드> (2014)와 <비포 시리즈>를 통해 호흡을 맞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함께 쳇 베이커의 일생을 다루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하였으나 무산된 적이 있다. 그러나 로버트 뷔드로 감독으로부터 <본 투 비 블루>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엄청 기뻐했다고 한다. 에단 호크의 캐스팅은 전형적인 음악 전기 영화를 거부하는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에단 호크는 쳇 베이커의 연주 호흡과 트럼펫 연주를 위한 손가락 움직임을 똑같이 하려고 노력을 했을뿐더러 그의 표정과 목소리 등 특정 인물의 개성까지 연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에단 호크의 열정적인 노력은 쳇 베이커의 영혼을 되살려놓은 듯한 느낌을 한순간에 공감하게 만든다. 에단 호크의 깊은 눈망울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한 영혼이 담긴 재즈 음악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픽션과 논픽션의 오묘한 조화

전기 영화는 실제 존재했던 인물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드라마라는 장르를 살리기 위해 픽션적인 요소를 포함시키도 한다. 그러나 <본 투 비 블루>는 단순히 허구적인 요소를 집어넣은 영화가 아니라 경계 없이 허구와 실재 이야기를 오묘하게 섞은 영화이다. 영화가 쳇 베이커의 1950년대와 1960년대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정상에서 내려와 재기를 위한 땀방울을 흘리는 이야기 그리고 뉴욕으로 복귀해서 연주하는 장면은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실제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허구적인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제인’이라는 여성은 실존 인물이 아니고, 쳇 베이커는 이탈리아에 1960년에 갇혔지만, 영화에서는 1966년으로 시기가 늦춰졌다. 게다가, 영화가 다루는 시기에 쳇 베이커에게는 세 번째 부인이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과감하게 삭제되었다. 실존 인물 대신 가상의 인물을 영화에 포함하고 특정 사건이 발생한 연도를 의도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영화는 눈에 띄는 성공적인 의의를 거둔다. 그 의의는 관객에게 어느 영화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울림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는 것이다. 만약 단순히 쳇 베이커가 겪은 사건들을 단순히 나열해서 보여줬다면 모든 것을 잃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한 음악가의 노력과 울림을 반감시켰을 것이다. 

쳇 베이커가 겪은 최악의 사건

쳇 베이커는 어렸을 때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아 앞니 하나가 없이 자랐다. 그러나 영화에서 쳇 베이커가 제인과 같이 길을 걷던 도중 마약상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대부분 치아를 잃어버렸다. 물론 이 사건을 두고 다양한 사람들이 설왕설래한다. 왜냐하면, 사건 조사를 위해 쳇 베이커가 증언을 여러 번 했지만, 증언할 때마다 말이 달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쳇 베이커가 치아를 잃어버린 사건을 본인이 꾸며냈다고 의심을 했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트럼펫 연주가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치아를 잃기 전에 익혀 놓은 자신만의 주법을 바꿔야 하고 치아 문제로 인한 통증은 영화에서 쳇 베이커가 연습할 때마다 일그러진 표정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트럼펫 연주할 때 엄청난 고통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런 최악의 사건은 영화 이야기 진행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알면 영화 감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선택의 기로, 빛과 어둠

<본 투 비 블루>에서 음악을 제외한다면 쳇 베이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마약과 제인이다. 마약이 어둠이라면 제인은 빛이다. 음악성과 스타성 측면에서 쳇 베이커의 커리어는 승승장구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쳇 베이커에게는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큰 벽이 있었다. 쳇 베이커에게 마일스 데이비스는 단순한 라이벌이라는 관계를 넘어 쳇 베이커가 자신의 능력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재즈의 거장이다. 그런 음악 외적인 상황이 주는 부담감이 쳇 베이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였고 결국 그는 마약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반면, 제인은 쳇 베이커가 폭행 사건으로 인해 치아를 잃고 재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때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헌신적인 인물이다. 물론 제인은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영화에서 그녀는 드라마 장르에 힘을 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쳇 베이커가 미래를 앞두고 선택해야 했던 선택지 중 하나인 ‘빛’을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쳇 베이커의 선택은 어둠, ‘마약’이었다. 힘든 재기 시간을 이겨낸 쳇 베이커이지만 재즈의 거장 마일스 앞에서 다시 연주하고 증명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그를 옳지 않은 길로 내몰았다. 마약은 음악 연주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게 도와줬지만, 제인이라는 소중한 동반자를 잃게 만든다. 쳇 베이커의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을 듣던 제인은 직감적으로 그의 선택을 알게 되었고 공연장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암스테르담에서 추락사로 생을 마감한다. 

변명처럼 들리는 음악, 그러나 굴곡진 인생을 고백하는 음악

우리는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Born to be Blue’ 등 수많은 곡을 들으면서 로맨틱 분위기 속에서 감동을 하여 눈물을 흘릴 뿐만 아니라 감정이입을 한다. 그러나 그의 노래 가사들을 자세히 듣다 보면 그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쳇 베이커가 ‘Born to be Blue’의 제목처럼 우울하게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굴곡진 삶을 살았고,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의 가사처럼 그는 많은 여자와 엮였지만 참된 사랑을 느껴 본 적이 없었지만 ‘My Funny Valentine’의 가사처럼 자신도 애틋함이라는 감정이 있었음을 음악으로 고백한 것처럼 들렸다. 물론 마약으로 스스로 망친 삶을 음악으로 변명했다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아이콘으로서의 부담감, 마일스와의 라이벌 의식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그를 사회의 어두운 면으로 빠지게 하고 결국 자기 삶을 파괴하기까지 이르렀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변명이 아닌 슬픈 고백이지 아닐까 싶다. 특히 ‘I’ve Never Been In Love’를 부르면서 보여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슬퍼 보이는 손짓은 쳇 베이커가 어둠을 선택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영화 <본 투 비 블루>를 보고 들으면서 느낀 쳇 베이커의 이미자와 소울을 영화감독이 그랬듯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한번 재구성을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본인이 재구성한 쳇 베이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다시 영화에 사용된 그의 음악을 다시 듣는다면 더욱 다양하고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쳇 베이커에 빙의되는 황홀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