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케이크다, <케이크메이커>

2019. 9. 10. 09:00어쩌다가 쓴 리뷰

<케이크메이커>는 얼마 전 막을 내린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케이크메이커>는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2018)나 현재 상영 중인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의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2017)과 비슷하게 마음 아픈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케이크 가게에 와서 케이크를 먹으며 위로를 얻는 그런 단순한 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케이크메이커>는 케이크의 겉만 보고 맛을 알 수 없듯이 영화는 겉만 보면 단순하지만 속을 파헤치니 정말 묵직한 영화였다. 아마도 개인의 상실, 죄의식, 그리고 화해 및 지유를 다루면서도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의 역사가 개인과 묶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과 케이크

토마스(팀 칼코프)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크레덴츠 카페를 운영하는 파티쉐다. 어느 날 사업차 베를린에 방문한 오렌(로이 밀러)이 토마스의 카페에 방문한다. 사업 때문에 꾸준히 이스라엘과 독일을 오고 가는 오렌은 토마스의 카페에 계속 방문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오렌은 자신의 자유를 옭아매는 전통과 관습에 벗어나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회피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그토록 원하던 진정한 사랑을 꿈꾼다. 토마스는 그의 성장 배경을 고려해보면 오렌을 만나기 전부터 상실감에 빠져 살고 있던 인물이다. 토마스의 입장에는 자신의 불안한 빈자리를 채워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 하지만, 이스라엘로 돌아간 오렌이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자 토마스는 다시 깊은 상실감에 빠지게 되었고, 그의 아내 아나트(사라 애들러)를 향한 죄의식이 발동해 이스라엘로 떠나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며 도움을 준다. 

아나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있지만 곧 새로운 카페 문을 열 예정이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가, 이스라엘로 온 토마스를 만나게 되었고 때 마침 카페 아르바이트생만으로 카페 운영하기가 버거웠던 아나트는 일자리를 계속 물어보던 토마스를 주방 업무사로 고용한다. 토마스가 아들 생일을 위해 몰래 만들어 놓은 쿠키를 맛 본 그녀는 그가 파티쉐라는 사실을 알고 케이크 만드는 방법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케이크는 달달한 맛이 입 안에 서서히 퍼지듯이 이렇게 자유를 갈망하거나 죄의식과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을 서서히 알게 모르게 끌어안는다. 

전통과 케이크

케이크를 개인과 연결할 때는 이 영화는 단순한 푸드 테라피 영화이지만, 독일과 이스라엘 간의 역사와 유대교의 엄격한 관습을 케이크와 관련짓는다면 깊이가 달라진다. 오렌이 독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라는 아픈 역사를 겪었지만 긴 세월이 지난 지금은 화해한 상태임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일부 유대인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여전히 금기시되는 사랑의 영역에 속한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를 아나트의 주변 인물들이 뒷받침해준다. 아나트는 토마스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지만,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그를 아주 쌀쌀하게 대하거나 아나트를 생각해서 최소한의 도움만 주고 빠진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의 아픔 혹은 잔재를 간접적을 확인할 수 있다.  

케이크는 유대교의 관습과 함께 고려한다면 자유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용어는 '코셔'인데, 이는 사전적으로 '합당한'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구체적으로는 '유대교 율법에 따라 식재료를 선정하고 조리하는 등 여러 엄격한 절차를 거쳐 만든 음식 혹은 인증받은 음식'을 의미한다. 아나트는 카페 운영을 하기 위해 코셔 인증을 받지만, 사실 그녀는 전통에 구속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그녀가 코셔를 어기면서 케이크를 같이 만드는 것도, 그리고 금요일 해 질 녘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 질 녘까지 이르는 안식일 '샤밧'에 토마스를 초대하는 것도 자유 추구라는 관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이상용 프로그래머의 말씀처럼 엔딩에서 아나트가 토마스가 있는 베를린으로 다시 간 이유는 단순히 그가 그리워서가 아닌 전통과 관습에서 탈피해서 억압받은 개인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자유 의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크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마법같이 움직인다. 근데, 그 마법이 개인의 관점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과 전통 및 관습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에서 <케이크메이커>는 더 감동적이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