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진정으로 기묘하고 아름답게 <영화로운 나날>

2019. 7. 21. 22:29주목할 만한 시선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영화로운 나날> (2018)은 점점 권태로워지는 삶을 살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떠나게 된 기이한 여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전작 영화 <여자들> (2016)의 경우 이번 영화처럼 우연을 매개로 했지만, 우연을 통해 이어진 관계 속에서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주인공 '시형(최시형)'이 만나는 여성들을 남성적 시선으로 소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로운 나날>은 기묘한 하루를 경험하며 점차 권태로움을 극복하고 깨달음의 목적지에 이르는 주인공 '영화(조현철)'의 기억과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우연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주인공 '영화'는 무명배우이지만 여자친구 '아현(김아현)'과 그녀가 키우는 고양이 '테오'와 함께 한결같이 소소하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작품을 찍지 못하면서 연기뿐만 아니라 삶, 관계 등 많은 것으로부터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한 그는 겨울 어느 날 여자친구와 싸우고 만다. 애인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자 화해하기는커녕 자신을 방어하는 일에 급급했던 그는 결국 집에서 쫓겨 난다. 갑자기 내쫓겼기 때문에 마땅히 갈 곳이 없는 그는 정처 없이 거닌다. 이때부터 주인공이 체험하게 될 광범위하고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여행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하루 동안 서울과 강원을 오가는 총 세 번의 여행을 떠나면서 매번 다른 동반자를 만난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다는 건 보통 취미의 영역에서 간주되지만, 성찰의 영역에서 여행은 답답한 현실로부터 잠깐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그 안에서 끝없이 방황하며 무언가를 깨닫는 행위로 바라볼 수 있다. 그가 떠나는 기이한 여행의 동선이 현실적인 느낌과 비현실적인 느낌 사이를 오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세 명의 여행 동반자와 길을 걷고 대화하며 그동안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몰랐던 삶의 이치를 배우기 시작한다. 

 

 

'영화'가 우연히 재회한 아는 형의 말처럼 삶은 정형화된 게 아니므로 매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즉, 일상은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의 연속 같지만, 실은 무슨 일이 벌어지지 모를 비합리적인 순간의 연속이다.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순간이 지속해서 일어나며 형성한 탁류는 두 눈을 덮는 장막이 되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또한, 이는 답답함을 유발한다. 그래서, 그는 답답함 때문에 여자친구가 말해주고 싶은 진정한 사랑과 자신이 거짓말해도 동생의 상황을 알고 아끼기에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누나의 진심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연으로 시작한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영화'는 늦었지만 '아현'에게 줄 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다시 찾아간다. 그가 쓴 편지는 어려운 텍스트를 나열하기보다 하루 동안 영화로운 여행을 하며 깨달은 점을 정성으로 적어 내린 결과물이기에 그녀는 감동받는다. 아마도 그 편지는 가족으로서든 이성으로서든 사랑하기에 때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을, 그리고 인간은 어떤 면에서든 절대로 완벽하지 않은 행위 주체이므로 위기를 맞이해도 함께 사랑을 가꿔 나가자는 고백을 품고 있을 테다. 더 나아가, 우연이 이끈 여행과 깨달음을 글로 적었다는 것은 그가 주체적으로 우연을 운명으로 승화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영화로운 나날>은 어떤 이유든 상관없이 답답함을 호소하거나 권태를 느끼는 이에게 선물과 같은 영화로 다가오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주인공 '영화'처럼 물리적 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로운 나날>과 함께 떠난 심리적 여행을 통해 본인의 주변을 지키는 사람을 떠올릴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로운 나날>을 이미 관람한 사람이든 아직 못 관람하지 못했지만 언제 어디선가 보게 될 사람에게 이 영화가 본인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의 웃음과 숨소리 그리고 접촉에 다시 한번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